이번 여행의 첫 내기는 '누가 가장 먼저 방 키를 잃어버릴까'였다. 결과는 허무하게도 셋 다 패배. 눅눅한 공기를 뚫고 프런트로 돌아가는 길, 서로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헛웃음이 터졌다. "완벽하게 공평한 시작이네."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 대신 정적이 흐르던 복도에서 우리는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죽곡 정식집의 나무 쟁반 위로 아홉 가지 계절이 정갈하게 내려앉았다. 원색의 식재료들이 빚어내는 색의 향연에 젓가락을 든 손이 갈 곳을 잃고 잠시 방황했다. 마침내 집어 든 신선한 해산물의 차갑고 탱글한 촉감이 혀끝에 닿는 순간, 입안 가득 바다의 짠 내음과 달큰한 풍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를 우리는 '탐험'이라 명명했다. 커다란 우산 하나에 셋이 엉겨 붙어 걷다 보니, 왼쪽 어깨는 이미 빗물에 푹 젖어 서늘했다. "이게 바로 청춘의 낭만이지!"라고 외치던 친구의 콧등 위로 빗방울이 툭 튀어 올랐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우리는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고, 피부에 쩍쩍 달라붙는 젖은 옷감마저 훈장처럼 느껴졌다.
Jiao Xi Zhang Rong Feng Huang Jiu Dian의 침대는 마치 거대한 구름 같았다. 우리는 누가 더 깊숙이 파묻히는지 내기를 하며 몸을 던졌다. 묵직한 구스 이불이 온몸을 포근하게 짓누르는 감각이 안도감을 주었다. "여기서 그냥 살까?" 누군가의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셋 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방 안에 고여 있던 투명한 정적이 더없이 달콤했다.
2월의 이란은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피부에 눅눅하게 감겼다. 비에 젖은 바위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서늘한 광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산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메아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오는 오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의 안개를 바라보았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오직 우리의 숨소리만 남은 시간이었다.
객실 내 온천에 몸을 담그자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물결이 피부를 스치는 감촉은 마치 매끄러운 비단 한 겹을 두른 듯 부드러웠다. 툭, 툭,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명상 음악처럼 공간을 채웠다. Jiao Xi Zhang Rong Feng Huang Jiu Dian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온천의 온기가 만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긴장이 천천히 느슨해졌다.
벚꽃 시즌이라는데 정작 꽃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내려다본 젖은 우비 어깨 위에, 아주 작은 분홍색 꽃잎 하나가 수줍게 내려앉아 있었다. 바람이 몰래 가져다 놓은 작은 선물 같았다. 떼어내면 사라질 것 같아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작은 조각이 여행의 색채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계획했던 일정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늦잠을 자고,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고, 이름 모를 골목의 맛을 탐닉했다. 생산성 없는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진짜 여행이 되었다. 텅 빈 일정표가 주는 해방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젖은 신발 끝에 묻은 흙이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 죽곡 정식의 아홉 가지 칸을 천천히 음미하며 계절을 느껴봐.
- 체크아웃 후에도 호텔의 수영장이나 시설을 이용하며 끝까지 게을러져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