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길게 선을 그을 때
이란의 2월은 온통 습기로 가득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눅눅한 공기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빗물에 젖은 바위 틈새에서 배어 나오는 특유의 서늘한 광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우리가 도착한 Jiao Xi Zhang Rong Feng Huang Jiu Dian의 로비는 압도적인 개방감을 자랑했다. 簡約時尚, 즉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공간 속에 서 있자니, 거대한 정적 속에 우리 두 사람만이 작은 점처럼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체크인을 마쳤다. 누군가 재촉하지 않는, 시간조차 느릿하게 흐르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풀게 했다.
배정받은 객실의 문을 열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현관에서 침대까지 걷는 그 짧은 거리조차 하나의 여정처럼 느껴질 만큼 여유로웠다. 그 물리적인 거리감이 주는 묘한 해방감에 이끌려, 나는 짐을 내려놓자마자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잘 말려진 시트가 바스락거리며 귓가를 간지럽혔다. 창밖으로는 짙은 회색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산등성이가 보였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지워주는 화이트 노이즈처럼 들려왔다.
준비된 잠옷으로 갈아입자 포근한 면의 감촉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우리, 이번 여행에선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까?" 나의 물음에 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함께 있다는 안도감만이 채워졌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공중에서 느릿하게 흩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는 책장을 넘겼고, 나는 천장의 무늬를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이었지만, 그 무색무취의 시간이 주는 평온함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바닥에서 천천히 말라가는 젖은 운동화의 눅눅한 냄새마저도 여행의 일부처럼 다정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오후 11시, 수면 위로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
밤의 정적이 깊어질 무렵, 우리는 Jiao Xi Zhang Rong Feng Huang Jiu Dian의 溫泉設施多樣, 즉 다채로운 온천 시설 중 하나인 탕으로 향했다. 물의 온도는 완벽했다. 너무 뜨거워 숨이 가쁘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해 아쉽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였다. 특히 이곳의 탄산수소염천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무척 매끄러웠다. 마치 투명하고 얇은 비단 한 겹을 온몸에 두른 듯한 감각이었다. 18도의 서늘한 바깥 공기와 대비되는 뜨거운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자,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온몸의 근육이 눈 녹듯 느슨하게 풀려나갔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너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창한 미래나 무거운 약속 같은 것은 꺼내지 않았다. 그저 오늘 먹었던 음식의 풍미나, 낮에 보았던 산의 짙은 녹색에 대해 속삭였다. 말과 말 사이의 빈틈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조차 온천수의 온도처럼 따뜻하고 밀도 있게 느껴졌다. 물속에서 우연히 손끝이 살짝 닿았을 때, 그 작은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심장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조식 뷔페에서 만난 송엽게 차완무시는 이번 여행의 정점이었다. 숟가락으로 살짝 떴을 때 느껴지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혀끝에 닿는 순간, 아침의 옅은 긴장감마저 녹아내렸다. 함께 곁들인 이란 지역의 별미인 蒜味肉羹, 마늘 향이 은은하게 배어든 고기 수프의 진한 풍미는 입안 가득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신선한 식재료들이 정갈하게 놓인 접시를 보며, 우리는 욕심내지 않고 정말 먹고 싶은 것들만 조금씩 덜어왔다.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동안, 창밖으로는 여전히 옅은 안개가 몽환적으로 끼어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 오직 우리만을 위한 아침이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그렇게 느리고 다정하게 흘러갔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의 우리도 지금처럼 서로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게 될 것만 같다.
물결이 잔잔해진 탕 속에 우리만 남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