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 부른 한밤의 작은 반란
8월의 타이베이 하늘은 누군가 반복해서 구겨놓은 눅눅한 편지지 같았다. 바람이 멎은 틈을 타 도시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고, 가로수 잎사귀에는 여전히 투명한 물방울들이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피부에 닿는 습도가 77퍼센트라는 숫자로 증명될 때, 우리는 젖은 수건을 뒤집어쓴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도망치듯 샹그릴라 파 이스턴 플라자 타이베이 로비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는 순간 쏟아진 서늘한 에어컨 냉기는 밖에서 묻혀온 끈적한 계절을 발끝에서부터 빠르게 말려주었다.
원래 계획은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43층 루프탑 수영장에서의 격렬한 수영과 6층 헬스장에서의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우리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보였다. 모험심은 습도에 밀려 사라졌고, 남은 것은 원초적인 허기뿐이었다. 결국 누군가 '배고픈데'라고 툭 던진 한마디에 우리는 홀린 듯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쇼핑백 속에 자극적인 냄새의 간식들을 가득 채워 돌아오는 길, 비닐봉지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그것은 우아한 호텔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그날 밤 우리가 계획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탐험이었다.
짠맛과 쓴맛 사이로 흐르는 시시한 진심
"야, 이 카펫 좀 봐. 너무 두꺼워서 내 발가락이 그대로 파묻히는 것 같아."
침대 옆 넓은 공간에 쇼핑백을 쏟아놓으며 친구 하나가 낄낄거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푹신한 카펫 위에 주저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닭강정과 캔맥주, 그리고 정체불명의 대만 과자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노란빛의 은은한 스탠드 조명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근데 여기 물병 봐. 유리병이네? 플라스틱 아니라고 이렇게 으스대는 거 좀 웃기지 않냐. 근데 물맛은 또 기가 막히게 깔끔해."
다른 친구가 차가운 유리 물병을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옆에서 노트북을 켜려다 테이블 옆면에 붙은 유선 랜 포트를 발견했다. 모든 것이 무선으로 연결된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아날로그의 흔적.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거 봐, 여기 랜선 꽂을 수 있어. 완전 아날로그 감성 아니냐. 여기서 갑자기 코딩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적당히 해라.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코딩이 아니라 이 닭강정의 짠맛이라고. 넌 여행 와서도 너무 분석적이라니까."
우리는 서로를 깎아내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맥주 캔을 땄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올라왔고, 칩스 과자의 강렬한 짠맛이 혀끝에 닿자마자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갔다. 밖은 여전히 덥고 습한 열대야의 한복판이었겠지만, 이 방 안만큼은 완벽하게 통제된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의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세로 널브러져, 내일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무책임한 약속이 그 어떤 정교한 여행 계획보다 달콤하게 느껴졌다.
소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인 안온함
왁자지르던 말소리가 잦아들고, 테이블 위에는 빈 캔들이 가볍게 부딪히며 작은 금속음을 냈다. 음식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기분 좋은 포만감과 나른함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샹그릴라 파 이스턴 플라자 타이베이 의 침대는 몸을 단단하게 받쳐주면서도 겉은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베개에 머리를 뉘자 적당한 높이가 목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빳빳하게 잘 마른 시트의 서늘한 촉감이 피부에 닿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창밖으로 타이베이의 야경이 보였다. 화려한 불빛들이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었지만, 방 안의 조명을 낮추자 그 빛들은 그저 먼 곳의 풍경이 되어 아득해졌다. 더 이상 유명한 맛집을 찾아 줄을 서야 한다는 의무감도, 무언가를 꼭 보아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그저 친구들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이 고요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용한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밤이었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낯선 도시의 좋은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것. 8월의 습한 공기를 잊게 만드는 건 결국 이런 사소하고도 확실한 안락함이었다. 나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우리는 아마 편의점 야식을 사 들고 이 카펫 위에 주저앉아 있을 것이라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기분 좋게 몸을 감싸 안았다.
- 짭조름한 풍미가 일품인 대만 편의점 닭강정과 시원한 흑맥주 조합
-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의 대만식 밀크티 푸딩과 바삭한 감자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