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머문 온기
하얀색 목욕 가운. 묵직한 면직물이 주는 안도감이다. 손끝에 닿는 촉감은 도톰하고 건조하며, 갓 세탁한 세제의 깨끗한 향이 옅게 배어 있다. 샹그릴라 파 이스턴 플라자 타이베이의 우아한 중식풍 객실, 침대 끝자락에 정갈하게 접혀 놓여 있던 그것을 몸에 걸치면 적당한 무게감이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외부의 습한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부드러운 껍질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피부에 닿는 안감의 포근함 속에 잠겨 있으면, 도시의 소음이 한 겹 걸러져 멀어지고 오직 나의 숨소리만이 선명해진다.
가운의 서걱거림과 낮은 속삭임
"밖은 좀 춥대."
그가 가운의 끈을 느슨하게 묶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침대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베이지색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12월의 타이베이는 섭씨 18도 정도라고 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지만, 가만히 있으면 서늘한 기운이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묘한 온도.
"그냥 여기 계속 있을까."
"그럴까."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까 파 이스턴 카페에서 나누었던 미식의 기억들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조스퍼 그릴에서 갓 구워져 나와 진한 숯향을 풍기던 늑갈비의 육즙,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대만식 우육면의 깊고 진한 국물 맛. 마지막으로 입안에서 부드럽게 터지던 대만 블랙 초콜릿 용암 케이크의 진득한 달콤함이 아직 혀끝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초콜릿 케이크, 생각보다 훨씬 달았어."
"응. 근데 그 달콤함이 딱 좋았어."
"루프탑 수영장 가기로 했잖아."
"지금 가면 햇살이 딱 좋을 시간인데. 근데 그냥 5분만 더 누워 있자."
그가 내 옆으로 파고들었다. 두꺼운 가운의 천이 서로 맞닿으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그렇게 계획에 없던 정적을 공유했다. 서두를 필요 없는 여행자의 특권 같은 시간이었다.
무용한 시간이 남긴 기억의 무늬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를 나설 때, 12월의 북동풍이 뺨을 날카롭게 스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바람이 견딜 만했다. 아마도 샹그릴라 파 이스턴 플라자 타이베이의 방 안에서 입었던 그 두터운 직조의 온기가 피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객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나의 작은 기침 소리가 공중에서 잠시 머물다 흩어질 정도로 넉넉한 공간감이 있었다. 그 넓은 공간을 채운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값비싼 가구가 아니라, 적당한 온도의 공기와 우리 두 사람의 느릿한 호흡이었다. 타이베이 일공일 빌딩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 방이었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회색빛 도시의 풍경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건물들 사이로 비스듬히 내려앉는 겨울 햇살이 카펫 위에 길고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그림자의 길이를 가늠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목적이 꼭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할까. 때로는 좋은 침대에 누워, 적당히 무거운 가운을 걸치고, 함께 먹은 음식의 맛을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산성 없는 무용한 시간이 주는 충만함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내자거나 더 행복해지자는 식의 거창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온도와 습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우리는 아마 빽빽한 계획표 대신 침대 위에서 긴 대화를 나누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 무심한 반복이 주는 안락함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진짜 휴식이었으므로.
노란 스탠드 불빛이 우리가 잠들 때까지 방 안을 낮게 채우고 있었다.
- 파 이스턴 카페의 숯불 구이 요리와 진한 대만식 우육면을 꼭 맛보길 권한다.
- 12월의 낮은 루프탑 수영장에서 겨울 햇살을 쬐며 멍하게 머무는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