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툰 진심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증거들
얼음 버킷: 샴페인 병의 매끄러운 표면에 맺힌 차가운 이슬,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의 규칙적인 리듬. 와인이 너무 차가운지 아닌지를 두고 십 분 넘게 유치한 논쟁을 벌이던 우리의 뾰족한 표정들을 모두 지켜봤다.
호텔 가운: 갓 세탁한 면의 빳빳함과 몸을 감싸는 묵직하고 포근한 무게감. 우리 모두를 거대한 마시멜로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 거울 앞에서 서로의 꼴을 보며 킥킥거리던 무용한 패션쇼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6층 야외 풀장의 타일: 발바닥에 닿는 매끄럽고 서늘한 감촉,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의 하얀 소음. 동시 수영을 시도하다 서로의 발등을 밟고 허우적대던 엉망진창인 발길질을 묵묵히 견뎌냈다.
홍루 중식당의 메뉴판: 묵직한 종이의 질감과 은은한 조명 아래 비친 화려한 요리 사진들.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정작 추천 메뉴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우리의 귀여운 모순을 기록했다.
방 카드키: 손끝에 닿는 딱딱한 플라스틱의 차가움, 도어락의 짧고 명쾌한 기계음. 웃느라 손이 떨려 카드를 세 번이나 잘못 긁었던 그 멍청한 순간을 받아냈다.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진 방 안의 서늘한 냉기가 우리를 반겼다.
만약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8월의 이란은 공기 자체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습도 77퍼센트. 피부에 닿는 공기가 끈적였지만, Lan Cheng Jing Ying Jiu Dian의 6층 정원에 올라서면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란양 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초록빛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그냥 멍하니 있는 게 최고의 일정이야." 누군가 툭 던진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헬스장의 최신 기구들은 우리에게 너무 과분했다. 우리는 운동 대신 물속에 누워 하늘을 보는 쪽을 택했다. 건강 활수 구역의 강한 물살이 등을 밀어낼 때, 그 적당한 압력이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시내로 나가 마신 북문 녹두사 우유는 걸쭉하고 달콤했다.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녹두 알갱이의 오독거리는 촉감과 혀끝을 자극하는 차가운 온도. 그 단순한 감각이 8월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 홍루 중식당에서 맛본 오리 껍질의 바삭함은 정직했고,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은 풍요로웠다. 우리는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었고, 함께 먹었고, 함께 멍하게 있었다.
럭셔리한 공간 속에서 가장 격식 없이 굴었던 우리의 모습이 오히려 이 공간의 여유와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빳빳한 리넨 시트 위에 땀에 젖은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룸서비스 메뉴판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간들. "이거 시키면 내일 후회할까?" 같은 시시한 대화들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누군가 힘내라는 말 대신, 그냥 아이스크림이 맛있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행은 결국 낯선 곳에 가서 평소처럼 굴어보는 일일 뿐이니까.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만 남은 방 안,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있었다.
- 북문 녹두사 우유의 걸쭉하고 차가운 촉감을 꼭 경험해 볼 것.
- 6층 야외 풀장에서 란양 평원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떠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