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 남은 오월의 색채
갓 짠 오렌지 주스. 손끝에 닿는 유리잔의 묵직한 냉기와 표면에 맺혀 느릿하게 흘러내리는 투명한 물방울들.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주황빛 액체 위로 얼음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들리고, 5월의 눅눅한 공기를 단숨에 가르는 시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무용한 대화가 주는 안도감
"너무 셔?" 내가 묻자, 상대는 잔을 내려놓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응, 조금. 근데 나쁘지 않아." "그럼 더 마시지 마." "아니, 그냥 이게 좋아."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는 이란의 5월이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고, 실내의 낮은 에어컨 소음만이 정적을 메웠다. "오늘 뭐 할까?" "글쎄. 그냥 누워 있을까." "그것도 좋네."
끈적한 공기 속에 새겨진 정지된 시간
그날의 오렌지 주스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과도 같았다. Lan Cheng Jing Ying Jiu Dian의 6층 야외 플랫폼에 올라가면 약 1,800평의 광활한 공중 정원이 펼쳐진다. 5월의 이란은 습도가 79%에 달해 피부에 닿는 공기가 끈적였지만, 정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에는 야생 생강꽃의 알싸한 향기가 섞여 있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맞으며 목적지 없이 걸었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눈이 가는 대로. 특별히 무엇을 보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실내 조절 풀에서 야외 풀로 옮겨갈 때, 피부에 닿는 온도의 미묘한 변화가 좋았다. 물속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있으면 란양 평원의 초록빛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영장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녹색의 풍경들은 그저 그 자리에 고요히 존재했다.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의 손끝만 간신히 맞댄 채 한참을 떠 있었다. 거창한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맞닿은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체온이 이미 모든 말을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레푼 헬스클럽의 사우나는 고요했다. 뜨거운 열기가 피부의 모공을 천천히 열고, 이어 차가운 냉탕에 몸을 던졌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한 수축감이 전신을 깨웠다.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의 반복적인 리듬. 그 단순한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의 복잡한 소음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운동 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인 헬스장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누워 있는 것'이었기에.
저녁에는 홍로우 중식당에서 북경 오리를 맛보았다. 바삭하게 튀겨진 껍질의 식감과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맛을 정확히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 순간의 은은한 조명과 적당한 온도의 차가 맛 속에 함께 배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깊숙이 몸을 파묻자, 적당한 무게감으로 몸을 눌러주는 포근한 침구가 안도감을 주었다. 복도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고, 그 소음조차 Lan Cheng Jing Ying Jiu Dian이 가진 다정한 일상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는 5월의 이란에서 많은 것을 하지 않았다. 동화제의 하얀 꽃길을 걷거나 숲속의 반딧불이를 찾아 헤매는 대신, 호텔의 푹신한 가운을 입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 여행. 그냥 좋았으니까 간 것이고, 그냥 좋았으니까 머문 것이다. 60%의 힘만 쓰며 보내는 무용한 시간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꽉 채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체크아웃을 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눅눅하고 따뜻한 공기가 그리워질 때면, 반드시 다시 이곳의 오렌지 주스를 마시러 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창가에 놓인 빈 유리잔 속에 오후의 햇살이 고여 있었다.
- 6층 공중 정원에서 란양 평원의 전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기
- 홍로우 중식당의 시그니처 북경 오리와 함께 여유로운 저녁 식사 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