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온도, 서로 다른 깊이의 침묵
6층 야외 플랫폼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는 순간, 1,800평의 정원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9월의 공기는 적당히 건조했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끈적임 없이 서늘했다. 신란양 공중정원의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자, 물의 밀도가 내 몸을 가볍게 밀어 올리는 부유감이 전신을 감쌌다. 수평선 너머로 란양 평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실내 풀에서 야외 풀로 이동할 때 느껴지는 찰나의 온도 차이는 몽롱했던 정신을 날카롭게 깨웠다. 엉덩이 마사지 풀의 강한 수압이 허리 끝을 묵직하게 때릴 때마다 묵은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정오의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반짝이는 수영장 바닥의 푸른 타일들을 보며, 나는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물의 무게와 공기의 밀도, 그리고 이 고요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내 몸의 부피만을 온전히 느꼈다. 60퍼센트의 힘만 쓰고 나머지는 물결에 맡긴 채, 나는 그저 흐르는 풍경이 되기로 했다.
물결을 따라 느릿하게 흔들리는 옆 사람의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대화를 채우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밀도 높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잔잔하게 고여 있었다. 락스 냄새가 섞인 물속에서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로후 삼온난의 뜨거운 증기 속에 몸을 맡겼을 때, 피부 위로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과 함께 긴장이 풀려나갔다. 그때 상대의 손끝이 내 손등에 아주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짧은 접촉이 주는 온기는 수영장의 물 온도보다 훨씬 더 뜨겁게 심장까지 전달되었다. 젖은 가운을 걸치고 복도를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카펫의 푹신한 촉감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나를 보며 살짝 웃어 보이는 그 표정 하나에 이번 여행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저 함께 누워 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함께 머문 자리, 하나의 기억
우리가 함께 발견한 기억의 닻은 죽곡 정식의 아홉 칸 나무 쟁반이었다. 정갈하게 놓인 해산물들의 색깔이 눈이 시릴 만큼 선명했다. 생선 살의 투명한 하얀 빛깔과 채소의 짙은 초록색이 대비를 이루며 미각을 자극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는 밥알의 단맛과 짭조름한 간장의 조화는 정확하고도 정중했다. 맛을 기억하는 일은 때로 장소를 기억하는 일보다 쉽다. 식사를 마치고 Lan Cheng Jing Ying Jiu Dian으로 돌아오는 길, 민권로의 보도블록 위로 9월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그림자의 길이를 재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 나던 은은한 시그니처 향기와 정중한 인사,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푹신한 침대의 하얀 시트. 아이들이 운전면허증을 따겠다며 소란을 피우던 핀도키 성의 소음조차, 이 공간의 정적을 방해하지 않는 다정한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만의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낮게 걸려 있던 란양의 별들.
- 밤 10시, 야외 수영장에서 란양 평원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
- 북후사의 낙우송 길을 따라 소리 없이 걷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