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작은 텐트, 하얀 가운
두툼한 하얀 목욕 가운.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는 면의 질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포근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갓 세탁한 세제의 깨끗한 향과 욕실의 은은한 수증기 냄새가 섞여 코끝을 간지럽힌다. 발목을 덮는 긴 기장 탓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카펫의 결을 쓸어내리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옷이라기보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 주는 작은 텐트처럼 느껴졌다.
적당한 온도의 침묵
"너무 뜨거워?"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2월 이란의 눅눅한 한기가 한 겹 벗겨져 나갔다. "아니, 딱 좋아." "다행이네. 난 조금 뜨거운 줄 알았어." "그냥 둬. 이 정도가 적당해."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결이 일렁이며 서로의 어깨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물 온도가 적당하면, 침묵도 적당한 온도를 갖게 된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숨소리가 일정한지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용한 시간이 주는 구체적인 위로
Xiang Ge Li La Dong Shan He Du Jia Fan Dian의 로비에 들어섰을 때, 마치 유럽의 오래된 저택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클래식한 가구들이 배치된 공간의 묵직한 공기는 들떠 있던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우리가 묵은 '코지 패밀리 룸'은 생각보다 넓어, 가벼운 기침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시간차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2월의 이란은 비가 잦았다. 창밖으로는 옅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공기 중에는 비에 젖은 바위에서 나는 특유의 서늘한 광물질 냄새가 섞여 있었다. 18도의 서늘한 기온은 얇은 겉옷 없이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호텔 내부의 온도는 그와 대조적으로 포근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빳빳한 시트 위에 나란히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거나, 창밖의 흐릿한 풍경을 관찰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스파의 물은 피부에 비단 한 겹을 바른 것처럼 미끄러웠고, 탄산수소염천의 촉감이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뜨거운 물속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속도가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여행이란 결국 평소에 하지 않던 '무용한 짓'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닐까. 아무런 목적 없이 누워 있고, 물 온도를 체크하고, 서로의 젖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일. 그런 틈새의 시간들이 삶의 빈틈을 채워준다.
잠시 웃음이 터진 건, 우리 둘 다 제 몸보다 훨씬 큰 가운을 입고 복도를 걸을 때였다. 서로를 바라보니 마치 두 마리의 하얀 유령이 나란히 걷는 것 같았다. 그는 가운 소매가 너무 길어 손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과장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공기는 충분히 다정했다. 카프리 조식 식당에서 먹은 따뜻한 빵과 신선한 과일의 맛,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동산강의 정적인 풍경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강물은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그 흐름에 맞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는 시간. 그냥 좋았으니까 좋은 것. 그것으로 충분한 여행이었다.
물기 어린 창문에 서로의 이름을 썼다 지웠다.
- 2월의 이란을 방문한다면, 동산강 생태 녹주에서 느리게 걷는 것을 추천한다.
- Xiang Ge Li La Dong Shan He Du Jia Fan Dian의 스파 시설은 이른 아침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쾌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