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과 여백이 주는 안온함
젖은 코트 깃에서 배어 나오는 눅눅한 빗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쟈오시역에서 내려 Jiao Xi Qi Lin Jiu Dian까지 걷는 7분 남짓한 시간, 길가 특산품점의 알록달록한 간판들이 빗물에 번져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신발 끝이 조금 젖어드는 축축함이 오히려 겨울 여행의 시작으로는 적당했다. 방에 들어서자 옅은 온천수의 유황 향이 공기 중에 부드럽게 떠다녔고, 적당한 온도의 실내 공기가 몸을 감쌌다.
배정받은 방은 23제곱미터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180x200 사이즈의 널찍한 침대가 방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고 있었고, 그 곁에는 몸을 깊숙이 파묻을 수 있는 작은 소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2월의 회색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소파에 앉아 침대 끝에 걸터앉은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는 약 두 걸음 정도의 물리적 거리가 있었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 욕실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와 침대에서 창가까지의 그 간격이 묘하게 편안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억지로 좁히지 않아도 되는 그 적당한 여백이, 오히려 서로의 숨통을 틔워주는 다정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침묵 속에 흐르는 온기
루프탑 노천탕에 몸을 밀어 넣는 순간, 2월의 날카로운 칼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물속은 더없이 아늑했다. 피부를 감싸는 미끈한 온천수의 촉감과 함께 란양 평원의 광활한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함께 내뱉는 하얀 입김이 허공에서 섞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뜨거운 물의 온도가 우리 사이의 공백을 밀도 있게 채워주고 있었다.
저녁으로는 호텔 내에서 제공하는 건강 훠궈를 마주했다. 적외선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육수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고, 산싱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파와 마늘의 알싸한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소고기 우둔살과 돼지 어깨살을 살짝 데쳐 입에 넣자, 담백한 육즙과 파의 향긋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그가 내 접시에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조용히 놓아주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살짝 휘어지는 눈매, 뜨거운 국물을 마신 뒤 내뱉는 나른한 한숨. 그런 사소한 신호들이 백 마디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호흡과 리듬이 서서히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과장된 표현 없이도, 그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그 찰나의 순간이 완벽했다.
각자의 고독이 머무는 자리
다음 날 오후, 3층으로 내려가 수심 120센티미터의 실내 수영장에 몸을 맡겼다. 물속에서 천천히 팔을 저으며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둔탁한 물소리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차단해 주는 방음벽 같았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렀지만, 각자의 생각 속으로 깊이 고요히 머무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완전히 혼자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고독이자 사치였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책장을 넘겼고, 상대방은 창밖의 흐릿한 풍경을 멍하니 응시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정적이 흘렀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연결해주고 있었다. Jiao Xi Qi Lin Jiu Dian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곁에 머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운동화는 어느새 말라 있었고, 방 안의 공기는 쾌적했다. 특별한 깨달음이 없어도 좋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 그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창가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아래로 길을 내고 있었다.
- 루프탑 노천탕에서 란양 평원의 전경을 바라보며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셔보길 권한다.
- 산싱 특산 파와 마늘이 들어간 담백한 훠궈는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더없이 적절한 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