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엉뚱함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폭신한 시몬스 침대 시트: 바스락거리는 하얀 면의 서늘한 감촉과 갓 세탁한 비누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누가 창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벌인 15분간의 치열한 논쟁과,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패해 밤새 시트 끝자락을 붙잡고 투덜거리며 잠들었던 우리의 유치함을 기억한다.
해수 풀의 푸른 물: 피부를 매끄럽게 감싸는 짭조름한 온기와 귓가를 울리는 찰랑이는 물결 소리. 누가 더 오래 숨을 참는지 내기하다 코로 물이 들어와 컥컥거리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던 친구의 얼굴, 그리고 그 찰나의 정적을 깨고 동시에 터뜨린 우리의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스파의 두툼한 수건: 눅눅한 습기와 함께 전해지는 묵직하고 포근한 무게감. 온천욕 후 젖은 머리를 감싸고 누워 나누던 쓸데없는 뒷담화들, 따뜻한 공기 속에 섞인 낄낄거림이 수건의 보풀 사이사이에 눅눅하게 스며들었던 그 은밀하고 나른한 시간을 기억한다.
조식 뷔페의 넓은 접시: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풍미와 알록달록한 열대 과일의 선명한 색감.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고 외치며 접시가 휠 정도로 음식을 산처럼 쌓아 올리던 탐욕스러운 손길과, 정작 절반은 남겼던 우리의 뻔뻔한 식탐을 기억한다.
발코니의 차가운 난간: 뺨을 스치는 서늘한 새벽 공기와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수평선의 푸른 빛. 새벽 6시, 구이산섬의 일출을 보겠다며 억지로 기어 나온 우리들의 멍한 표정과, 서로의 헝클어진 머리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던 그 몽롱하고도 찬란한 순간을 기억한다.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이 방의 가구들은 우리를 '사랑스러운 소란함'이라 부를 것이다. 10월의 이란은 피부에 기분 좋게 감기는 적당한 습도와 선선한 바람이 머무는 곳이었다. 우리는 거창한 모험을 꿈꾸며 이곳에 왔지만, 정작 가장 깊은 위로를 받은 건 Kai Du Guang Chang Jiu Dian의 안락한 품속에서 서로의 못난 점을 가감 없이 끄집어내던 시간이었다. "야, 그냥 여기서 계속 살면 안 될까?"라는 누군가의 엉뚱한 혼잣말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럭셔리한 크루즈를 연상시키는 복도를 걸을 때면, 우리는 마치 미지의 대륙을 향해 항해하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구두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고, 은은한 조명은 우리의 들뜬 마음을 더욱 돋우었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화려한 여정이 아니라, 정갈한 9궁격 나무 쟁반에 담긴 죽곡 정식의 다채로운 색감과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신선한 해산물의 풍미였다. 가을 햇살 아래서 반짝이던 그 식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다시 돌아와 해수 풀에 몸을 담그면, 짠 기운 섞인 바다 내음과 온천의 온기가 섞여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밀어낼 때마다 일상의 긴장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갔다. 마치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고요한 섬에 우리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 계획은 엉망이었고 시간은 무용하게 흘러갔지만, 그 무질서함이야말로 우리가 갈망하던 진짜 휴식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깨달았다. 함께라면 어디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조차 완벽한 여행이 된다는 것을.
멀어지는 파도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의 무용한 약속을 잡았다.
- 구이산섬의 일출을 보려면 새벽 6시엔 일어나세요. 잠은 부족해도 풍경은 확실합니다.
- 호텔 근처 와이아오 해변을 걷다가 만나는 작은 카페에서 10월의 바람을 느껴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