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엉뚱함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증거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 정오까지 잠만 자겠다던 맹세를 지킨 우리의 게으름을 묵묵히 견뎌냈다. 에어컨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들리던 건조한 마찰음과, 깊은 낮잠의 흔적으로 패인 주름들이 그날의 나른함을 증명한다.
폭신한 호텔 가운. 뷔페 식당까지 이 차림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던 우리의 뻔뻔함을 지켜보았다. 은은한 세제 향이 감도는 보드라운 섬유 사이에는, 거울 앞에서 서로의 꼴을 보며 낄낄거리던 10분간의 망설임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8.5도의 냉천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터져 나온 비명과,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내기하던 유치한 승부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서늘함 끝에 찾아온 묘한 쾌감을 기억하는 투명하고 매끄러운 물결.
접시 위의 노란 망고. 마지막 한 조각을 두고 벌였던 소리 없는 눈치 싸움과, 결국 가위바위보로 결정된 허무한 승패를 기억한다. 하얀 접시 위에서 선명하게 빛나던 과육과 손가락 끝에 묻어난 끈적한 과즙, 그리고 그것조차 웃으며 핥아먹던 우리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까지.
플라스틱 키 카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묻어난 우리의 설렘,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눕고 싶어 했던 본능적인 움직임을 기록했다. 표면에 남은 작은 흠집들이 우리가 얼마나 자주 문을 열고 닫으며 이 공간을 탐색했는지 말해준다.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우리는 항해하는 법을 모르는 서툰 선원들 같았다. Kai Du Guang Chang Jiu Dian이라는 거대한 하얀 배에 올라탔지만, 정작 우리가 한 일은 넓은 발코니에 기대어 멍하니 구이산섬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6월의 공기는 눅눅했고, 바다에서는 옅은 소금기가 섞인 짠내가 났다. 하지만 그 끈적임마저 여행의 일부였다. "야, 그냥 여기서 평생 살면 안 될까?" 누군가의 엉뚱한 혼잣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3층 스파에 들어섰을 때 코끝을 스친 진한 편백나무 향기는 졸업 후의 막막한 고민들을 잠시 잊게 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서로의 빨개진 피부를 비웃던 순간, 물 온도는 정확했고 피부에 닿는 감각은 정직했다. 저녁 식사 때 마주한 펠라고 뷔페의 신선한 해산물과 셰프의 정교한 요리들은 우리를 잠시 교양 있는 어른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식탁 아래로 발을 툭툭 치며 장난치던 모습은 여전했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대신, 내일 아침 메뉴에 무엇이 나올지를 더 열심히 토론했다. 무용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무용함이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만들었다. 굳이 무언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며 창밖의 푸른 해안선을 바라보았을 때, 그냥 여기 함께 있으니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창밖의 구이산섬이 서서히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3층 스파의 18.5도 냉천과 온탕을 번갈아 이용하며 피부의 긴장을 풀어보길 권한다.
- 펠라고 뷔페의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함께 6월의 제철 망고를 꼭 챙겨 먹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