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무게를 견디는 검은 원
무쇠 솥. 빛을 모두 빨아들인 듯한 묵직한 무광의 검은 몸체는 낮은 탁자 위에서 하나의 고요한 섬처럼 놓여 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처음에는 아주 낮게,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숨소리처럼 웅웅거리던 소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롭고 명징한 끓음으로 변해간다. 뚜껑의 작은 틈새를 뚫고 솟아오른 가느다란 수증기는 직선으로 뻗어 올라가다, 방 안의 서늘한 공기를 만나 둥글게 말리며 흩어진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스친 솥의 표면은 뜨겁다 못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그 열기는 이내 주변의 공기를 미지근하게 데운다. 찻잔에 물을 따를 때 나는 둔탁하고 깊은 소리는 방 안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적의 밀도를 더 촘촘하게 메운다. 그 소리는 쇼와 시대의 기억을 머금은 낮은 천장과 짙은 색의 나무 벽에 부딪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흩어진다. 창호지를 통과해 들어온 부드러운 오후의 빛이 솥의 곡선을 따라 흐르고, 방 안에는 오래된 히노끼 나무의 알싸한 향과 끓는 물의 습한 기운이 섞여 묘한 안도감을 만들어낸다.
물이 끓는 시간의 거리
"물 끓는 소리가 들려."
그가 다다미 위에 길게 누운 채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창밖의 9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타이둥의 하늘은 유독 투명해서 구름의 경계가 칼로 벤 듯 선명했다.
"응, 들려. 아주 규칙적인 소리네."
"여기 있으면 우리가 정말 세상의 끝, 아주 먼 곳에 온 것 같아."
"그냥 조금 다른 속도의 곳에 온 거겠지."
그는 몸을 일으켜 호텔에서 내어준 차가운 홍우롱차를 한 모금 마셨다.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나무 탁자 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번져나갔다. 우리는 곁에 놓인 붉은 퀴노아 스틱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고소하고 달큰한 맛이 혀끝에 남았다.
"근데 여기, 생각보다 더 조용하다."
"가끔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잖아. 그 소음이 오히려 여기를 더 평화롭게 만들어."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억지로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쾌적했다. 무거운 무쇠 솥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가 우리 사이의 빈칸을 적당한 온도로 채워주고 있었다.
무용함이 주는 가장 사치스러운 위로
체크아웃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 무쇠 솥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유한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결정체였다. Bao Sang Ting Wu machiya posong의 공간은 과거 교사들의 기숙사였다는 역사를 품고 있었다. 세월에 마모된 나무 복도를 걸을 때마다 들리던 삐걱거림은,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넘기는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는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다다미의 서늘한 촉감을 피부로 느끼며 누워 있었고, 느릿한 걸음으로 다녀온 미술관의 정적을 나누었을 뿐이다. 9월의 공기는 적당히 습했고, 피부에 닿는 온도는 기분 좋게 미지근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낮은 천장 아래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하며 우리는 서로의 삶의 리듬이 조금씩 비슷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저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차가 식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런 무용한 행위들이야말로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위로였다. 다시 그 나무 방에 누워, 아무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밀도 높은 휴식이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 낮게 걸려 있던 은하수를 기억한다.
- 걷기 좋은 9월, 호텔에서 14분 거리의 타이둥 미술관과 인근 공원을 천천히 산책해 보세요.
- 체크인 후 제공되는 시원한 홍우롱차와 퀴노아 스틱으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