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타이베이는 습기가 피부를 짓누르는 도시였다.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 하나가 한참을 버티다 아래로 미끄러졌다. 하늘은 누군가 반복해서 구겨놓은 잿빛 편지지 같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 신발이 다 젖을지 내기를 했고, 결과는 셋 다 패배였다. 눅눅한 공기가 끈적하게 달라붙어 불쾌감이 정점에 달했을 때, 더 오쿠라 타이베이 로비에 들어섰다. 순간,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다. 서늘하고 쾌적한 공기가 젖은 옷 사이로 스며들며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로비 베이커리에서 풍겨오는 진한 버터 향이 눅눅했던 기억을 단숨에 지워냈다. 갓 구운 빵의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메뉴판의 낯선 글자들을 읽는 대신, 우리는 그저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입안에서 파삭하게 부서지는 질감 뒤로 고소한 풍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와, 이건 반칙인데." 우리는 말없이 빵을 씹으며, 다음 일정을 고민하는 일조차 사치라고 느꼈다.
중산역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를 든 녀석이 자신만만하게 가리킨 방향은 결국 막다른 골목이었다. 눅눅한 벽면과 낡은 간판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다 동시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 덕분에 타이베이의 골목 구석구석을 다 보겠네. 거의 지도 제작 수준인데?" 비꼬는 말투였지만 사실 나쁘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작은 소품샵과 이름 모를 찻집을 발견하는 재미가 빗줄기보다 강렬했다.
객실의 TV 리모컨은 유독 고집이 셌다. 특정 각도로 꺾어서 눌러야만 채널이 겨우 돌아가는 기묘한 특성이 있었다. 우리는 그걸 '각도의 예술'이라 부르며, 누가 더 빨리 채널을 바꾸는지 유치한 내기를 시작했다. 낡은 기계가 주는 묘한 불편함이 오히려 우리에겐 웃음 포인트가 됐다. 결국 우리는 리모컨을 내팽개치고, 빳빳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가 온몸의 모공을 열어젖혔다. 그 뒤에 곧바로 뛰어든 냉탕의 물은 서늘하고 매끄럽게 피부를 감쌌다. 8월의 끈적임이 씻겨 내려가고,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이 느슨하게 풀렸다. 스팀룸의 몽환적인 안개 속에서 땀을 빼고 냉탕의 정적으로 뛰어들 때의 그 짜릿한 온도 차이. 그것은 이번 여행에서 맛본 가장 정직하고 원초적인 쾌감이었다.
더 오쿠라 타이베이의 카펫은 발목을 부드럽게 삼킬 듯 두툼했다. 클래식한 가구들이 배치된 공간에는 적당한 무게감과 정적이 흘렀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절제된 정돈함이 느껴지는 곳. 창밖으로 들려오는 타이베이의 소음은 두꺼운 유리창에 가로막혀 아득한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객실 내 네스카페 커피 머신에서 흐르는 진한 향기가 공간을 채웠고, 우리는 이곳에서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갑자기 쏟아진 태풍성 강우에 계획했던 모든 외출이 취소됐다. 우리는 라운지 소파에 길게 늘어져 서로의 멍청함을 비웃었다. 창문을 때리는 거센 빗소리가 천연 배경음악처럼 깔렸고, 우리는 얼음이 짤랑거리는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젖은 신발을 말리며 보낸 그 무용한 시간이, 역설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밀도 높은 기억으로 남았다.
하얀 시트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빳빳하게 다려진 면의 촉감이 살결에 닿을 때마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특별할 것 없는 오후였지만, 에어컨의 적당한 온도와 포근한 침구가 주는 안락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다시 이곳에 와서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 고요함 속에 잠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낮은 채도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더 오쿠라 타이베이 베이커리의 갓 구운 빵은 꼭 먹어봐, 정말 환상적이야.
- 스파 시설에서 사우나와 냉탕을 오가는 코스는 무조건 추천, 피로가 싹 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