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타이베이는 정직하다. 바람이 불면 망설임 없이 춥다고 말해준다. 외투 깃을 바짝 세우고 걷다 보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우리는 그렇게 도심의 냉기를 피해 더 오쿠라 타이베이의 품으로 숨어들었다. 무거운 회전문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소음과 한기가 거짓말처럼 차단되었다. 천장의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가 쏟아내는 빛의 파편들이 눈부시게 흩어지고, 공기 중에는 우아한 서양란의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이곳은 화려한 과시보다 단단한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고전적인 선의 정갈함과 현대적인 면의 세련됨이 묘하게 어우러져, 머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19층 객실의 문을 열자, 탁 트인 넓은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와, 진짜 넓다!" 둘째가 외치며 하얀 시트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아이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회색빛 타이베이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12월의 비스듬한 햇살이 나무 바닥 위에 길고 가느다란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었다. 밖이 춥기에 실내의 온기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역설. 우리는 이곳에서 며칠간 세상과 단절된 채 머물 생각이었다.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었다. 그저 눕고 싶었고, 먹고 싶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벽한 무위의 시간을 갈망했다.
가족 여행이란 결국 서로의 인내심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첫째는 머리를 감기 싫다며 칭얼거렸고, 둘째는 자기 몸보다 훨씬 큰 호텔 가운을 망토처럼 두르고 바닥에 질질 끌며 뛰어다녔다. 우아하고 정적인 휴가를 상상했지만, 현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소란함으로 가득한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질서함이 싫지 않았다. 정갈하게 정돈된 호텔 방이라는 캔버스 위에 아이들의 생동감이 덧칠해지는 순간, 이곳은 비로소 차가운 숙소가 아닌 우리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호텔 내 스파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며 이 평온함을 이어가리라 다짐했다.
우리는 멀리 나가는 대신 호텔 베이커리로 향했다. 복도 끝에서부터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풍미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펑리수를 샀다. 포장지의 정교함에 감탄한 것도 잠시, 아이들은 이미 내용물에 마음을 빼앗겼다. 침대 끝에 나란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달콤한 빵을 나누어 먹었다. 입가에 노란 가루를 묻힌 채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여행의 본질은 유명한 명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찰나의 시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즐거움이 된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발바닥에 닿는 두툼한 카펫의 감촉이 포근했다. 아이들의 분주한 발소리를 모두 흡수해버리는 고요한 질감. 도시의 모든 소음이 지워진 진공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누워있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 소박한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으니, 이번 여행은 이미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함께 발견한 다섯 가지
펑리수. 진한 버터 향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웠다. 정교한 포장지보다 입가에 묻은 노란 가루의 달콤함이 더 기억에 남는다. 둘째가 가장 먼저 맛을 보았다.
흰색 목욕 가운. 갓 세탁한 면의 깨끗한 냄새가 났다. 아이들에게는 너무 커서 바닥에 끌렸지만, 그만큼 포근했다. 첫째가 이것을 망토처럼 두르고 복도를 누볐다.
19층의 창문. 낮게 깔린 회색 구름과 비스듬히 스며드는 겨울 햇살이 보였다. 도시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고요한 높이였다. 내가 가장 먼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베이커리 종이봉투. 손끝으로 전해지는 빵의 온기가 다정했다. 고소한 곡물 냄새가 봉투 틈으로 새어 나왔다. 배우자가 먼저 봉투를 소중하게 꽉 쥐었다.
두툼한 카펫.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저항감이 좋았다. 모든 소란을 삼켜버리는 고요하고 깊은 질감이었다. 둘째가 발가락으로 카펫을 꾹꾹 누르며 발견했다.
창밖에는 다시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호텔 베이커리의 펑리수는 포장이 정성스러워 선물용으로 좋지만, 객실에서 바로 먹을 때 가장 달콤하다.
- 12월의 타이베이는 변덕스러우니, 무리한 외부 일정보다 호텔 내부의 스파와 편의시설을 충분히 누리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