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 후 침대 옆 스탠드 아래를 가만히 살폈다. 작은 먼지 하나가 노란 조명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 정성껏 닦아냈겠지만, 다시금 내려앉은 그 작은 조각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공간보다는 이런 사소한 빈틈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우리는 누가 먼저 짐을 풀지 내기를 했지만, 결국 모두가 귀찮음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굴복해 침대 위로 쓰러졌다. 눅눅한 시트의 감촉과 은은한 세제 향이 섞인,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복월루의 딤섬에서는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투명한 피 너머로 수줍게 비치는 분홍빛 새우의 자태. 한 입 베어 물자 탱글한 식감이 치아 끝에 기분 좋게 닿았다. 뭉글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정확하게 튕겨 나가는 저항감이 일품이었다. 곁들인 차의 쌉쌀한 향이 입안을 정돈해주었다. 우리는 30초 동안 아무 말 없이 씹는 소리만 냈다. 맛의 기억이 선명해질 때, 대화는 잠시 멈춰도 충분했다.
"너 이번 여행에서 스마트폰 확인 안 하고 대안삼림공원까지 걸을 수 있겠어?" 친구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는 호기롭게 내기를 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5분도 안 되어 가장 먼저 화면을 켠 건 내기를 제안한 바로 그 친구였다. 우리는 그 멍청한 패배를 두고 한동안 길거리에서 낄낄거렸다. 대단한 성취는 없었지만, 그런 실없는 웃음들이 여행의 밀도를 촘촘하게 채워갔다.
라운지 바의 메뉴판은 생각보다 길고 화려했다. 우리는 마치 고전 문학의 난해한 구절을 해석하듯 칵테일 이름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가운데 20분간의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고, 결국 우리가 주문한 것은 모두 같은 종류였다. 취향마저 비슷하게 지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잔 속에서 찰랑거리는 같은 색의 액체가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4월의 타이베이 공기는 특유의 무게감이 있다. 눅눅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젖은 솜처럼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온기다. Fu Rong Da Fan Dian의 객실에 누워 천장의 조명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 그냥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복도에 깔린 카펫이 놀라울 정도로 두꺼웠다. 운동화 굽 소리가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정적. 호텔이 우리의 소란스러운 소음들을 조용히 집어삼키는 기분이었다. 발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푹신한 질감이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공간이 주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컸고, 그 정적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어 옷소매가 금세 젖어 들었다. "망했다"고 투덜거리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공기 중에 섞인 진한 녹나무 냄새가 좋았다. 젖은 흙과 잎사귀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조금 쌀쌀해진 기운 덕분에 Fu Rong Da Fan Dian의 SPA 센터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 젖은 옷을 벗어 던지는 순간의 쾌적함은 비가 오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치였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피부는 비단 한 겹을 얇게 바른 것처럼 매끄러웠다. 차가운 시트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피부와 천이 닿는 그 서늘한 감촉이 기분 좋게 전율했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갈지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좋으면 머물고 별로면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었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가늘게 그어지고 있었다.
- 복월루 딤섬은 꼭 드셔보세요. 새우의 탱글함이 정말 일품이에요.
- 대안삼림공원 산책 후 호텔 SPA에서 피로를 푸는 코스를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