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겨울나무들이 낮은 숨을 몰아쉬던 시간
Fu Rong Da Fan Dian의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나선 순간, 1월의 타이베이는 예상보다 서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코끝을 톡 쏘는 북동풍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고, 내뱉는 숨마다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생각보다 춥네," 짧은 혼잣말과 함께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옷깃을 세워주었다. 목적지는 인근의 대안삼림공원이었지만, 지도를 보는 대신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도심의 소음이 점차 옅어지고, 어느덧 거대한 초록의 정적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마치 도시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다.
겨울잠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가지를 낮게 늘어뜨린 채 고요히 서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았다. '힘내자'거나 '행복하다'는 식의 거창한 확인이 없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저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온도가 적당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맞잡은 손의 온기가 피부를 통해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로의 보폭을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겹쳐졌고,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의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처럼 이어졌다.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스며든 옅은 햇살이 바닥에 작은 사각형의 빛을 그려냈고, 그 빛이 닿는 곳마다 공기가 아주 조금씩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계획 없는 방랑이 주는 해방감. 그냥 걷고, 보고, 춥다고 느끼는 그 단순한 감각들이 이번 여행의 가장 밀도 높은 즐거움이 되었다.
밤 11시, 방 안의 조명이 낮게 고요해지은 시간
저녁으로 즐긴 순원 일식 세트의 여운이 여전히 혀끝에 머물러 있었다. 바다의 풍미를 가득 머금은 쫄깃한 구공바오와 얇은 튀김옷 속에 갇혀 있던 새우의 진한 육즙, 그리고 적당한 온도로 구워진 스테이크의 육향까지. 특히 문화로 오래 끓여낸 마늘 닭곰탕의 진한 향은 코끝을 간지럽히며 몸속 깊은 곳까지 온기를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수박 한 조각의 예상치 못한 달콤함에 우리는 동시에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찰나의 웃음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신호탄 같았다.
Fu Rong Da Fan Dian으로 돌아와 3층의 도시 온천에서 몸을 녹인 뒤, 객실의 조명을 낮게 조절했다. 따뜻한 물속에서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피부에 닿던 매끄러운 물결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했다. 방 안은 쾌적했고 공기는 차분하게 고요해져 있었다. 빳빳하게 세탁된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가, 이내 두꺼운 호텔 침구 속에 몸을 밀어 넣었을 때 밀려오는 포근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오늘 하루의 조각들을 아주 느리게 복기했다. 공원의 마른 잎들, 거리의 소음,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차의 온도.
특별한 사건도, 대단한 깨달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저 이렇게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다 이룬 것 같았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하루가 되었고, 그 무용함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사치였다. 굳이 무언가를 더 하려 하지 않고, 이 고요한 침묵 속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겨울의 한 조각을 공유했다. 나쁘지 않은, 아니 꽤 완벽한 밤이었다.
스탠드 불빛이 꺼지고, 다정한 어둠이 방 안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