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먼역 4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눅눅한 습기가 젖은 수건처럼 얼굴에 척 감겼다. 숨을 쉴 때마다 끈적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De Li Zhuang Jiu Dian 로비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땀방울 맺힌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그제야 막혔던 숨통이 트이며 비로소 타이베이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길거리에서 산 망고 빙수는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노란색이었다. 한 숟가락 크게 떠 넣으니 혀끝이 얼얼할 정도의 냉기가 뇌까지 전달됐다. 6월의 지독한 열기가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달콤함보다는 날카로운 차가움이 더 강렬했고, 입안에서 서걱거리며 녹아내리는 얼음 알갱이들이 눅눅한 기분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너 진짜 지도 볼 줄 아는 거 맞아?" 누군가의 날 선 질문이 공중에 흩어졌다. 우리는 10분 동안 똑같은 모양의 간판이 걸린 골목을 세 번이나 뱅뱅 돌았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아스팔트의 열기가 짜증을 부추겼다. 결국 4번 출구 바로 위에 우리가 묵을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서로의 처참한 방향 감각을 비웃으며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캐리어를 활짝 펼쳤다. 그 순간, 친구의 가방에서 정체불명의 전자기기들이 쇳소리를 내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이걸 대체 왜 가져온 거야?"라는 경악 섞인 질문에 돌아온 답은 짧고 명료했다. "혹시 몰라서." 그 '혹시'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이 가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광경을 보며, 우리는 이 여행이 결코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새벽 6시, 얇은 커튼 틈새로 창백한 푸른빛의 새벽녘이 스며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베이의 거리는 아직 잠이 덜 깬 채, 낮은 엔진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차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창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오는 그 짧은 정적이, 왁자지껄한 여행의 소란함보다 훨씬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자 뽀얀 김이 욕실 전체를 안개처럼 감쌌다. 미끄러운 비누 거품이 손가락 사이로 몽글몽글하게 빠져나갔다. De Li Zhuang Jiu Dian의 아늑한 객실 안에서 느끼는 이 온기는 밖의 습한 열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포근함이었다. 물속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눈을 감으니, 비로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풀리며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비릿한 흙내음이 진동했다. 우리는 도망치듯 들어온 호텔의 넓은 고객 휴게실 소파에 젖은 생쥐 꼴로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 끝이 눅눅하게 젖어 발가락 사이가 찝찝했지만,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 나른한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빳빳하고 시원한 호텔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야심 차게 적어 내려갔던 계획 리스트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에어컨 바람이 기분 좋게 살결을 스치는 방에서, 옆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누워 있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눅눅한 공기마저 다정했던, 6월의 어느 오후.
- 시먼역 4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되니까 걷지 말고 엘리베이터를 꼭 타봐.
- 조식 뷔페의 과일 종류가 정말 많으니까 배불러도 과일은 꼭 챙겨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