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말은 이미 물고기 집이야"
"야, 너 진짜 5월이 타이베이 여행 적기라고 했지? 이 날씨가 적기냐고!" 지수가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 습도 80퍼센트면 천연 가습기잖아. 피부 수분 공급 제대로 된다니까?" 민준의 뻔뻔한 대답에 우리는 동시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개소리 좀 그만해! 내 양말 지금 거의 물고기 집 수준이라고. 발가락 사이로 물고기가 지나가는 기분이야!" "야, 그래도 우리 다 같이 젖었으니까 공평하네. 이게 바로 끈끈한 동료애라는 거야, 이 멍청아." 누군가 낄낄거리며 민준의 젖은 어깨를 툭 쳤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젖은 신발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비린 빗물 냄새와 섞인 서로의 땀 냄새마저 웃음거리로 만드는, 딱 그 정도의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소음이 여과되는 하얀 상자
우리가 머문 De Li Zhuang Jiu Dian은 시먼딩의 무질서한 활기 속에 놓인 거대한 정적의 섬 같았다. 육중한 문을 닫는 순간, 밖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오토바이의 날카로운 경적 소리와 수많은 관광객의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여과되었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걷어낸 하얀 벽과 직선으로 뻗은 가구들이 주는 정직한 미니멀리즘은, 과부하가 걸린 우리의 신경을 차분하게 고요해지는 진정제 역할을 했다.
객실의 큰 유리창 너머로는 시먼딩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빗물에 번져 몽환적인 분홍빛과 푸른빛의 띠를 만들고 있었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이 닿는 피부의 촉감은 더없이 쾌적했고, 코끝에는 갓 세탁한 시트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비누 향이 감돌았다. 밖에서는 끈적이는 습기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빳빳하고 서늘한 흰 시트 위에 몸을 던지면 그만이었다. 침대의 적당한 탄성이 젖은 몸의 무게를 부드럽게 받아냈고, 손끝에 닿는 면직물의 서늘함은 도시의 열기를 빠르게 식혀주었다.
시먼역 4번 출구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안도를 느꼈다. De Li Zhuang Jiu Dian의 정갈한 공간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정확한 온도와 습도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을 선물했다. 지하의 훠궈 식당에서 올라오는 진한 육수 냄새가 복도 끝에서 희미하게 느껴질 때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도시의 소음이 아주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무용한 시간들이 그렇게 겹겹이 쌓여갔다.
밤의 끝에서 나누는 낮은 목소리
"엄마한테 전화했어?" 조명을 낮춘 방 안, 민준이 고요해지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깜빡했다." "오늘 어머니날이라며. 빨리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수가 무심하게 툭 던졌지만, 그 목소리에는 다정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응, 근데 뭐라고 해. 그냥 좋다고 해." "그거면 됐지 뭐." 낮의 소란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조금 더 진솔한 마음들이 고였다. "우리 10년 뒤에도 이렇게 여행 올 수 있을까?" "글쎄, 그때도 날씨 탓하며 싸우고 있겠지." 우리는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빗소리에 섞여 조금 더 느리고 따뜻하게 퍼져나갔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서, 우리는 말하지 못한 진심들을 공기 중에 흩뿌렸다.
창밖의 네온사인이 빗물에 번져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시먼역 4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기 편하다.
- 호텔 지하의 훠궈 식당에서 뜨끈한 국물로 5월의 눅눅함을 씻어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