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무게를 머금은 회색 린넨 쿠션
회색 린넨 쿠션. 거칠게 짜인 직조감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서늘한 감촉이 전해지며, 빛을 흡수하는 짙은 회색이 방 안의 정적과 어우러진다. 몸을 기대면 푹 꺼지기보다 단단하게 받쳐주는 적당한 저항감이 느껴지는, 12월의 낮은 채도를 닮은 물건.
소음의 경계에서 나눈 낮은 속삭임
"밖은 여전히 시끄럽네."
그녀가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말했다. 창밖으로는 시먼딩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생각보다 조용해. 그게 좀 묘하네."
"그러게. 바로 옆이 시장인데, 여기 들어오면 다른 세상 같아.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냥, 잠시 멈춰 있는 곳 아닐까."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의 소음이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처럼 변할 때까지, 서로의 고요한 호흡만을 가만히 나누어 가졌다.
도시의 소란을 걸러내는 무채색의 필터
타이베이의 12월은 생각보다 매섭다. 시먼역 4번 출구를 나와 호텔로 향하는 짧은 거리 동안, 칼날 같은 바람이 옷깃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사람들의 활기찬 외침과 길거리 음식의 진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시먼딩의 거리는 무질서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De Li Zhuang Jiu Dian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 모든 소란함은 정교하게 설계된 직선과 무채색의 공간 속으로 흡수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이 주는 묘한 쾌적함이었다. 세련된 분위기의 프런트에서 안내받은 셀프 체크인 기기를 통해 직접 방 카드를 만드는 과정은, 마치 이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우리만의 비밀 통행증을 발급받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카드를 쥐었을 때의 매끄러운 플라스틱 질감과 '틱'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는 비로소 우리가 안전한 안식처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객실의 큰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유리 한 겹의 두께가 주는 안도감은 상당했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으나 방 안의 공기는 밀도가 낮고 쾌적했다. 우리는 그 정적 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았다. 평소라면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정했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호텔 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주문한 패왕 텐더 숄더 스테이크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진한 육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강한 불에 빠르게 익혀 겉면은 바삭하게 그을렸고, 속은 육즙을 가득 머금어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나이프로 고기를 썰 때 느껴지는 묵직한 저항감과 입안에서 퍼지는 풍부한 풍미가 좋았다.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정직한 맛이었다. 곁들여 나온 채소의 아삭함이 고기의 기름진 맛을 적절히 잡아주었고, 우리는 말없이 접시를 비워냈다. 배가 부르자 마음은 한결 느슨해졌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오후의 옅은 볕이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2월의 햇살은 뜨겁지 않고 적당히 미지근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바스락거리는 흰 시트의 감촉이 피부에 닿았고, 방 안에는 은은한 세탁 세제 냄새가 감돌았다. 누군가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함께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주는 안락함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무용한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 그리고 그 시간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안심. De Li Zhuang Jiu Dian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우리는, 도시의 소란함조차 이제는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리에게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창가에 남겨둔 옅은 햇살이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었다.
- 시먼역 4번 출구에서 호텔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책으로 도시의 활기를 느껴보세요.
- 호텔 레스토랑의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로 쌀쌀한 저녁의 허기를 채워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