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툰 진심을 훔쳐본 다섯 가지 조각들
빨간 카펫. 발끝이 푹푹 빠질 만큼 묵직하고 두툼한 촉감과 로비 특유의 은은한 우디 향.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다 발이 꼬여 함께 넘어진 우리 셋의 둔탁한 소리와, 그 뒤를 이은 숨 가쁜 웃음소리를 촘촘한 섬유 사이사이에 기억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색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같은 소란함이 이 카펫 속에 모두 흡수되었을 것이다.
웰컴 드링크 컵. 손끝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냉기와 유리잔 표면에 맺힌 투명한 이슬이 테이블 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던 모습. 누가 먼저 잠들지 내기를 하던 유치한 속삭임과, 결국 10분 만에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던 친구의 무방비한 얼굴을 정면에서 지켜본 투명한 증거물이다.
동파육 접시. 진한 간장 향과 달콤한 육즙이 어우러져 윤기가 흐르는 고기 한 점과 그 위로 피어오르던 따스한 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순간 찾아온 3분간의 완벽한 침묵, 서로를 챙기던 가식은 사라지고 오직 젓가락질의 속도만 빨라졌던, 우리 관계에서 가장 솔직했던 식욕의 기록이다.
에어컨 리모컨. 딱딱한 플라스틱의 촉감과 정적을 깨는 삑삑거리는 기계음, 그리고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작은 액정 불빛. 21도의 서늘함과 24도의 미지근함 사이에서 벌어진 소리 없는 전쟁,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누군가 리모컨을 이불 속에 파묻어버렸던 그 허망한 순간을 기억한다.
빳빳한 흰색 시트. 갓 세탁한 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세제 향. 양명산의 단풍길을 무작정 걷다 지쳐 돌아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다 함께 침대로 다이빙했을 때의 묵직한 충격. 5성급 호텔의 정갈함이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 어떤 음악보다 경쾌했다.
무생물들의 시선으로 본 우리의 소동극
아마 이 방의 가구들은 우리를 '우아함을 꿈꾼 소란쟁이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Tian Cheng Da Fan Dian의 럭셔리한 분위기에 맞춰 품격 있게 행동하자고 다짐했지만, 정작 우리가 한 일은 편의점에서 산 과자 봉지를 뜯어 침대 위에 흩뿌리며 서로의 흑역사를 들춰내는 일이었다. "우리 진짜 어른처럼 놀기로 했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가장 크게 웃고 있었던 건 나였다. 로비의 화려한 조명과 높은 층고 아래서는 잠시 얌전한 척했지만, 방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는 다시 열여섯 살의 철부지로 돌아갔다.
계획표는 가방 구석에서 구겨진 채 잊혔고, 우리는 그저 누워 창밖으로 비스듬히 스며드는 타이베이의 11월 햇살을 감상했다. 4개의 레스토랑과 사우나 시설이 주는 안락함보다, 서로를 놀리며 낄낄거리는 소음이 더 완벽한 휴식이었다. 오래된 것의 편안함과 현대적인 편리함이 공존하는 Tian Cheng Da Fan Dian의 분위기처럼, 우리의 우정도 세월의 때가 묻었지만 여전히 풋풋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방의 벽지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소란스러운 웃음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가장 핵심적인 사운드트랙이었다.
타이베이의 11월, 공기는 적당히 서늘했고 우리의 웃음은 뜨거웠다.
- 타이베이역 M3 출구 바로 앞이라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 취정 중식당의 닝식 동파육은 필수.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질감이 여행의 피로를 씻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