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바닥에 길게 누운 직사각형의 햇살
송산역 2번 출구의 회전문을 나서자마자 12월의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외투 깃을 바짝 세우고 서둘러 몇 걸음을 옮기자, 도심의 소란함 속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Shou Du Da Fan Dian Song Shan Guan의 입구가 나타났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외부의 한기를 단숨에 지워낼 만큼 포근하고 적당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의 낮은 웅성거림과 은은한 디퓨저 향이 섞여 묘한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의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짙은 색의 목재 가구들이 뿜어내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잘 닦인 나무 표면의 은은한 광택은 마음을 고요해지혔고, 부드러운 베이지 톤의 커튼은 오후의 낮은 햇살을 겹겹이 걸러내어 방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빛은 바닥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그림자를 그려놓았는데, 마치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갈 작은 섬처럼 보였다.
당신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가방을 내려놓으며 나를 쳐다봤다. "지금 바로 라오허 야시장 갈까?" 당신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닥을 딛었다. 발바닥에 닿는 서늘하면서도 매끄러운 감촉이 좋았다. 42인치 LCD TV는 검은 화면 그대로였고, 방 안에는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깊은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의 서늘한 촉감이 피부에 닿았다가, 이내 서로의 체온으로 미지근하게 변해갔다. 원래는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고 야시장의 인파 속으로 뛰어들 계획이었지만, 그 모든 일정들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흐릿해졌다. 굳이 무언가를 하러 나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렇게 누워 서로의 숨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정직한 목적이 된 순간이었다. 창밖으로는 야시장의 소란함이 아주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지만, 이 방의 정적은 그 모든 소음을 아득한 곳으로 밀어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다.
새벽 6시, 남색 하늘 아래의 101 빌딩
옥상 공중정원의 공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차갑고 투명했다. 12월의 새벽하늘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깊은 남색이었고, 그 한가운데에 타이베이 101 빌딩이 외롭게, 하지만 선명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두꺼운 가디건을 겹쳐 입고 서로의 팔꿈치를 맞댄 채 그 풍경을 응시했다. 살을 에듯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맞닿은 어깨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있어 견딜 만했다. 101 빌딩의 화려한 조명이 하나둘 꺼지며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눴다. 거창한 미래나 영원한 약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아침 조식으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였다. 그 소박한 대화가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다시 내려와 1층 조식 뷔페로 향했다. Shou Du Da Fan Dian Song Shan Guan의 아침은 정갈한 채식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방장의 추천이라는 '수조'를 접시에 담았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짭조름하고 진한 풍미가 혀끝을 자극하며 입안을 가득 채웠다. 함께 곁들인 따뜻한 흰 죽 한 그릇을 천천히 비우고 나니, 새벽녘의 한기로 얼어붙었던 몸 안쪽부터 서서히 온기가 차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와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수압이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다.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와 등을 강하게 내리쳤고, 그 물리적인 압력은 여행 중에 쌓인 미세한 피로와 긴장을 한꺼번에 씻어내리는 일종의 정화 의식처럼 느껴졌다. 비데 기능이 있는 변기의 매끄러운 표면과 매일 아침 정갈하게 교체되는 수건의 빳빳한 촉감까지. 그런 사소하고 무용한 디테일들이 모여 이 낯선 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다시 짐을 쌌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쉬었다는 만족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함께 덮었던 시트의 온기가 손끝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