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들의 소란스러운 행진
"너 진짜 길치인 거 여기서 인증하는 거야?" 민지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지도가 이상한 거라고!" 지후가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우리는 이미 228 연휴의 거대한 인파 속에 갇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3월 가오슝의 공기는 눅눅한 밀가루 반죽처럼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고, 거리에는 낯선 향신료 냄새와 사람들의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지도가 이상한 게 아니라 네 손가락이 문제겠지!" 내 말에 모두가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땀에 젖은 셔츠가 등에 쩍쩍 달라붙어 불쾌했지만, 서로의 멍청함을 깎아내리는 쾌감이 그 불쾌함을 압도했다. "됐고, 일단 호텔 가자. 나 지금 당장 눕지 않으면 여기서 쓰러질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비웃으며 택시에 몸을 던졌다.
백색의 고요가 주는 위로
The Amnis Hotel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소란함은 두꺼운 유리문 너머로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땀에 젖은 목덜미를 스쳤고, 공기 중에는 세련된 시트러스 향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로비 중앙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입자 형상의 조형물은 마치 도시의 소음을 흡수해 정화하는 거대한 필터처럼 보였다. 우리가 묵은 미니멀 스타일의 객실은 더욱 정직했다.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하얀 벽과 직선으로 뻗은 가구들이 소란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바스락거리는 고밀도 면 시트의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피부에 닿자, 비로소 여행자의 긴장이 풀리며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통창 너머로 펼쳐진 가오슝의 도심은 회색빛 정육면체들이 질서 정연하게 쌓인 거대한 레고 마을 같았고, 그 풍경은 방 안의 정적과 대비되어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후의 햇살이 하얀 벽면에 부딪혀 부드럽게 산란되는 모습은 마치 공간 전체가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찾은 인피니티 풀에서는 미지근한 물의 매끄러운 감촉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수평선 끝에 턱을 괴고 앉아 있으면, 도시의 소음이 아주 먼 곳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누군가 멋진 포즈를 잡다 미끄러지는 찰나의 소동조차 이곳에서는 하나의 평화로운 풍경이 되었고, 우리는 그 모습에 배를 잡고 웃으며 이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복숭아 향기에 섞인 진심
"근데 말이야, 우리 나중에 또 올 수 있을까?" 밤 11시, 방 안의 조명을 낮추자 공간은 아늑한 동굴처럼 변했다. 테이블 위에는 나마샤에서 사 온 복숭아가 놓여 있었다. 분홍빛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자, 차가운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며 달콤함 속에 숨어 있던 약간의 산미가 혀끝을 자극했다. 3월의 가오슝이 주는 가장 정직한 맛이었다. "글쎄,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후가 낮게 대답했다. 낮 동안의 날 선 농담과 소란스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서로의 고른 숨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난 그냥 지금이 좋아.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 거." 민지가 덧붙였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놀리지 않았다. 대신 어릴 적 잃어버렸던 장난감 이야기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몰래 읽었던 낡은 책 이야기 같은, 아주 사소하고 무해한 기억들을 꺼내 놓았다. 거창한 미래나 대단한 계획은 없었지만, 입안에 남은 복숭아의 잔향과 적당한 방 안의 온도가 우리 사이의 빈틈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낮의 우리가 서로를 밀어내며 웃었다면, 밤의 우리는 서로의 고요를 공유하며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창가에 놓인 젖은 운동화가 어느새 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 3월의 가오슝은 습하므로 통기성이 좋은 면 소재의 옷을 준비하세요.
- The Amnis Hotel의 인피니티 풀은 해 질 녘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