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묶어주려 허리를 숙였을 때, 10월의 가오슝 햇살이 등 뒤로 길게 늘어졌다. 그냥 그런 오후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순간이 특별해지는 곳이 있다.
무채색의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아이들의 원색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공중에 떠다니는 '춤추는 입자'들이 보였다. 미세한 먼지조차 빛의 조각이 되어 일정한 리듬으로 유영하는 광경에 아이들은 마법 가루가 내린 거냐며 눈을 반짝였다. 대답 대신 나는 그 정교한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The Amnis Hotel의 로비는 극도로 정갈했다. 무채색의 미니멀리즘이 지배하는 공간은 마치 거대한 여백의 캔버스 같았고, 그 위에 아이들이 입은 알록달록한 티셔츠와 장난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생동감을 더했다. 정돈된 공간과 정돈되지 않은 가족의 소란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풍경. 창밖으로 보이는 가오슝의 10월 하늘은 채도가 낮아져 있었다. 직사광선이 아니라 비스듬히 내려앉는 빛, 그 무심한 색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장식보다 비어 있는 공간이 주는 안도감이 더 컸기에, 우리는 비로소 여행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면 아래로 고요해지은 도시의 소음과 정직한 고동
16층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에서는 물소리가 겹겹이 층을 이루며 쌓였다. 아이들의 비명 섞인 웃음소리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고, 풀의 끝단에서 물이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소리는 마치 도시를 향해 쏟아지는 작은 폭포 같았다. 직원 시드의 목소리는 낮고 정확했다. 안전을 확인하고 수건을 건네는 그의 말투에는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그 과하지 않은 친절함이 오히려 깊은 신뢰를 주었다. 문득 물속에 귀를 깊숙이 담그자 세상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차단되었다. 웅성거림은 사라지고 오직 내 심장의 둔탁한 박동 소리와 아이의 젖은 발소리만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도시의 소음은 저 멀리 아래에 잠겨 있었고, 여기에는 오직 물의 파동과 나의 호흡만이 존재했다. 그 적막함이 꽤 괜찮았다. 그저 물 위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을 모두 달성한 기분이 들었다.
서늘한 이슬과 빳빳한 면직물이 주는 안도감
체크인 때 건네받은 꿀 음료의 컵 표면에는 차가운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손끝에 닿는 서늘함이 가오슝의 끈질긴 잔열을 잠시 잊게 했다. 리셉션의 티나가 달고 있던 금열쇠 배지가 조명에 반짝이는 모습은 작은 금속 조각 이상의 신뢰감을 주었다. 객실로 들어서자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주는 쾌적함이 온몸을 감쌌다. 특히 시트는 놀라울 정도로 빳빳했다. 아이가 침대 위에서 뒹굴 때마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살결에 닿는 면의 촉감이 정직했다. 눅눅함이 전혀 없는, 햇볕에 잘 말려진 빨래 냄새가 배어 있는 촉감. 발가락 끝으로 시트의 결을 천천히 느껴보았다. 적당한 텐션이 느껴지는 매트리스 위에 몸을 깊숙이 맡기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 잊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실의 매끄러운 타일이 발바닥에 닿는 온도는 딱 적당해 마음까지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해산물 죽의 온기
아침 식사로 제공된 해산물 죽은 온도가 완벽했다. 너무 뜨거워 입천장을 데게 하지도, 그렇다고 식어 풍미를 잃지도 않은 상태.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러다니는 쌀알의 질감은 포근했고, 해산물의 짭조름한 감칠맛은 과하지 않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세미 뷔페 형식이라 가짓수가 화려하진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맛이 분명하고 정직했다. 아이들은 갓 구운 빵에 딸기잼을 듬뿍 발라 먹으며 입가에 붉은 잼을 묻힌 채 서로를 보고 웃었다. 화려한 성찬은 아니었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음식들이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이자 밤새 굳어 있던 몸속의 긴장이 천천히 풀려나갔다. 배가 부르자 비로소 여행의 피로가 기분 좋은 나른함으로 밀려왔다. 특별한 기교가 없는 맛이었기에,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문득문득 생각나 그리워질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숲의 끝자락을 닮은 우디 향과 가오슝의 건조한 바람
객실 안에는 은은한 우디 향이 감돌고 있었다. 인위적인 향수의 냄새가 아니라, 비 온 뒤의 깊은 숲 끝자락에서나 날 법한 담백하고 묵직한 냄새였다. 창문을 열자 10월의 가오슝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여름의 끈적임이 가시고 약간은 건조해진 바람 냄새, 그리고 그 속에 섞인 낯선 도시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젖은 머리카락 냄새와 호텔의 정갈한 향기가 섞여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수영장에서 올라온 뒤 몸에서 나던 옅은 소독약 냄새마저 이곳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하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공기는 가벼웠고, 냄새는 담백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을 주는 냄새였다. 우리는 그 향기 속에 파묻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냥, 여기 계속 누워 있고 싶었다.
- 16층 인피니티 풀에서 가오슝의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길 권한다.
- 조식의 해산물 죽은 꼭 맛볼 것.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나누기에 더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