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여기 있을까"
"지금 밖은 서른두 도래." 그가 창밖의 아스팔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6월의 가오슝은 정직하게 뜨거웠다. 지열이 올라와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풍경이 보였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하얀 시트의 서늘한 감촉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냥 여기 있을까." 내 말에 그는 짧게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16층에 수영장 있다며. 거긴 좀 다를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계획 없는 여행, 그 자체가 우리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습도와 냉기 사이의 안온함
The Amnis Hotel의 객실은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절제의 미학이 돋보였다. 무채색의 공간이 주는 정적은 마치 소음 없는 바다처럼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에어컨의 낮은 웅웅거림이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방 안에서, 우리는 슬리퍼를 끌고 16층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물속으로 몸을 천천히 밀어 넣는 순간, 피부에 닿는 서늘한 감촉이 가오슝의 끈적한 습기를 단숨에 씻어냈다. 수평선 너머로 펼쳐진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갈 때, 우리는 서로의 젖은 어깨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을 가만히 응시했다. 물결이 몸을 가볍게 밀어낼 때마다 일상의 무거운 짐들이 조금씩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정갈하게 차려진 전복죽의 온기가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졌다. 쫄깃한 전복의 식감과 은은한 바다 향이 잠든 감각을 깨웠고, 함께 곁들인 장어 덮밥의 진한 풍미가 더해졌다.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어제 본 연꽃의 색깔과 시장에서 산 망고의 진한 달콤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껍질을 깎을 때 방 안에 퍼지던 망고의 농익은 향기와 손가락 끝에 남은 끈적한 과즙마저 사랑스러웠다. 저녁에는 정성스럽게 담긴 가이세키 요리를 즐겼다. 자극적이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이 혀끝에 닿을 때, 우리는 서로의 호흡에 맞춰 천천히 시간을 음미했다. 로비에서 만난 직원들의 온화한 미소와 계단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배려는 이 여행의 온도를 더욱 다정하게 만들었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 위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적당한 온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안온함이 우리 사이를 채웠다.
창밖의 매미 소리가 아득해지고, 방 안에는 오직 우리의 낮은 숨소리만 남았다.
- 16층 수영장에서 도시의 소음을 지우고 함께 멍하니 떠 있어 봐.
- 아침 조식으로 전복죽을 꼭 주문해 봐,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