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엇박자의 발걸음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누가 가장 늦게 도착할지 내기를 했다. 결과는 모두의 정시 도착이었지만, 정작 우리를 기다리게 한 것은 기차였다.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 5월 가오슝의 눅눅한 습도가 거대한 젖은 수건처럼 온몸을 무겁게 감싸 안았다. 습도 78퍼센트. 피부에 닿는 공기는 끈적였고, 숨을 들이켤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도시의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와, 진짜 숨이 턱 막힌다!" 한 친구가 벌써 덥다며 손부채질을 해댔고, 다른 친구는 구글 지도를 든 채 단호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캐리어 바퀴가 보도블록의 틈새에 걸릴 때마다 '덜컹, 덜컹' 하는 규칙적인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누군가는 풍경에 한눈을 팔아 뒤처졌고, 누군가는 목적지를 향해 성급히 걸었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억지로 맞추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는, 그런 기분 좋은 엇박자를 즐겼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우리 사이의 공백을 편안하게 채웠다. 5월의 남부 대만은 그렇게 끈적이지만 다정한 시작을 알렸다.
길을 잃어 비로소 마주한 백합의 향기
호텔로 향하던 중, 우리는 지도상의 직선을 벗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낯선 골목은 좁고 구부러져 있었지만,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진한 백합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군가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은 마당의 꽃가지가 담장을 넘어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마침 소나기가 그친 뒤였다. 하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투명한 푸른색이었고,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윤곽은 마치 정교하게 오려낸 종이 인형처럼 선명했다. 공중에 희미하게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음 일정에 대해 속삭였다. 나마샤 산속으로 들어가 반딧불이의 춤을 보고, 제철을 맞은 수소 복숭아의 달콤한 과즙을 잔뜩 들이켜기로 했다. 사실 의미를 찾는 여행은 때로 피곤하다. 그냥 좋으니까 가는 것이고, 맛있으니까 먹는 것이다. 이렇게 무용한 일들에 기꺼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자 가장 사치스러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젖은 운동화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둔탁한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오답이었다.
마침내 닿은 정적, 하얀 시트의 품
니코 가오슝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젖은 옷가지에 배어 있던 습기를 빠르게 앗아갔다. 은은한 향기와 절제된 조명이 흐르는 복도를 지나 우리가 예약한 청공 일품 객실의 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로 다이빙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시트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에 닿았고, 200x200cm의 거대한 시몬스 침대는 적당한 단단함과 포근함으로 우리의 지친 몸을 그대로 받아냈다. 창밖으로 펼쳐진 가오슝의 전경은 고요했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워 있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허기를 달래러 내려간 세레나 뷔페는 기대 이상의 미식 경험이었다. 정갈하게 놓인 음식들 사이로 셰프들의 절도 있는 움직임이 보였고, 특히 디저트 섹션의 무스 케이크는 입안에서 구름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리며 진한 달콤함을 남겼다. 플라잉 재팬에서 맛본 일본 요리들은 재료 본연의 맛을 정교하게 짚어내어 혀끝에 닿는 감각을 깨웠다. 과하지 않은 간과 섬세한 칼질, 그 정성스러운 맛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능이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호텔 슬리퍼가 너무 커서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거창한 행복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몸을 깊게 받아주는 좋은 침대, 혀끝을 만족시키는 맛있는 음식, 그리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일은 조금 더 늦게, 아주 게으르게 일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에 놓인 물잔에 오후의 햇살이 길게 머물러 있었다.
- 세레나 뷔페의 디저트 코너는 놓치지 말고 천천히 즐길 것
- 나마샤 반딧불이 투어는 5월 말 이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