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공기와 젖은 운동화의 거리
5월의 가오슝은 공기부터가 무겁다. 습도 78퍼센트. 피부에 닿는 공기가 끈적거려 마치 얇은 막 하나를 쓰고 걷는 기분이다. 둘째는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떼를 쓰고, 첫째는 이미 티셔츠 등이 땀으로 짙게 변해 있다. 길가에 핀 백합 향기가 습한 바람에 섞여 코끝을 스치는데, 향기롭다기보다 조금은 지독하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툭 하고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펴는 속도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하며 물웅덩이를 찾아 뛰어다녔고, 내 운동화 앞코는 금세 진흙색으로 변했다. 노란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거리,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스팔트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젖은 옷이 살에 달라붙는 불쾌함이 있었지만, 그 모습이 꽤나 생경해서 나쁘지 않았다. 그저 이 눅눅함을 피해 빨리 들어갈 곳이 필요했다.
경계를 넘어 마주한 서늘한 정적
니코 가오슝 호텔의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세계의 밀도가 바뀐다. 밖의 눅눅함이 전부 환상이었던 것처럼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피부의 끈적임을 순식간에 씻어낸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던 도시의 소음이 차단되고, 낮게 깔린 클래식 음악과 정중한 인사만이 남았다. 바닥의 대리석은 차갑고 매끄러웠으며, 공기는 가볍고 쾌적했다. 젖은 옷에서 올라오는 눅눅한 냄새가 사라지고 호텔 특유의 정제된 향기가 그 자리를 채우는 찰나의 감각.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보람이 충분했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로비의 넓은 공간에 압도된 듯 잠시 조용해졌다. 소란스러웠던 외부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정돈된 고요함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아이들의 영토가 된 하얀 요새
객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이곳을 자신의 새로운 영토로 선포했다. 넓은 객실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두꺼운 카펫 위에는 장난감 자동차들이 질서 없이 늘어섰다. 나는 그 소란함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의 감촉이 서늘하고 깨끗했다. 몸의 무게가 그대로 흡수되는 적당한 탄성. 아이들이 침대 위에서 트램펄린처럼 뛰기 시작했지만, 그 소음마저 이 방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의 조식은 이 여행의 가장 구체적인 즐거움이었다. 아이들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에서 눈을 빛내며 맛을 고르던 모습,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딤섬의 촉촉함, 그리고 갓 구운 페이스트리의 바삭한 소리까지. 정갈하게 놓인 아시아식 메뉴와 신선한 과일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특히 로비에서 샀던 펑리수는 버터 향이 진했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혀끝에 닿는 파인애플의 달콤함이 아이들의 아침 짜증을 잠재웠다. 이곳의 공간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란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커다란 바구니 같았다. 씻고 나와 입은 가운의 포근함과 욕실의 적당한 수압은 여행자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무지개
창밖으로 가오슝 항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씻은 듯 맑았고,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 희미하고 커다란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아이가 작은 손가락으로 그 무지개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도시의 소음은 두꺼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득하게 들려왔다. 안전한 내부에서 바라보는 외부의 무질서함은 묘하게 안심이 되는 법이다. 나마샤 산속에서 보았던 반딧불이의 명멸처럼,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의 묵직한 실루엣과 서서히 짙어지는 보랏빛 하늘.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이 정도의 평온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누워있는 게 여행의 목적이었다면,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성취를 이룬 셈이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채웠다.
- 조식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의 기분을 맞추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 로비에서 판매하는 펑리수는 짐 가방에 세 상자 정도 챙겨가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