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여기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정말 여기로 정한 거야?" 그가 나지막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니코 가오슝 호텔의 로비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감도는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응. 그냥, 여기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법이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는다. 그는 내 옆에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2월의 가오슝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미지근한 계절이 주는 다정한 정적
가오슝의 2월은 다정하다. 21도.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온도. 창문을 열면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들어와 얇은 커튼을 아주 천천히 흔든다. 니코 가오슝 호텔의 객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바스락거리는 흰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 일상의 무거운 생각들은 그 천 아래로 밀어 넣었다. 특히 일본식 스타일의 넓은 욕조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있으면, 따뜻한 물결이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며 마음속 앙금까지 씻어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방 안의 정적은 가벼웠고, 발소리를 삼켜버리는 두툼한 카펫의 질감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다정하게 격리해 주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해항의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고, 그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침묵이 얼마나 안온한지를 깨달았다.
아침 식사 시간에는 소란스러운 활기가 있었다. 정갈한 일식 메뉴들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현장에서 바로 짜주는 과일 주스였다. 기계가 과일을 으깨는 둔탁한 소리와 컵 바닥에 맺히는 차가운 이슬.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적당히 달고 시큼한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그 단순한 맛이 입안에 퍼질 때, 우리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느꼈다. 오후에는 라운지에서 정교하게 놓인 작은 케이크들을 맛보았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정직한 단맛과 흰 테이블보 위에 떨어진 작은 빵가루. 그것은 무용하지만 소중한 시간의 흔적이었다. 호텔에서 제공한 달콤한 펑리수를 한 입 베어 물자, 버터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며 여행의 밀도를 더했다.
호텔 밖으로 나서면 붉은 벽돌 담벼락이 햇볕을 받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는 사랑의 강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습도 72퍼센트의 공기는 도시의 색채를 더 진하게 만들었다. 길가에 서 있는 거대한 울트라맨 조형물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무심한 거대함이 주는 묘한 안도감 속에서, 나는 내 옆에서 보폭을 맞추던 그의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로의 어깨가 가끔 맞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온기는 2월의 공기보다 훨씬 따뜻했다.
창밖의 가오슝은 여전히 느긋했고, 우리는 그 속도에 몸을 맡겼다.
- 조식 때 서로가 좋아하는 과일을 몰래 골라 주스를 선물해 보세요.
- 사랑의 강변을 걷다 울트라맨의 발치에서 잠시 멈춰 서로의 손을 잡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