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로 걷는 가오슝의 오후
경전철 대의역의 플랫폼에 발을 내딛자마자, 눅눅하면서도 다정한 온기를 품은 가오슝의 공기가 피부에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1월의 이곳은 겨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너그러웠고, 반소매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중 한 명은 굳이 두꺼운 가디건을 고집했다. 그는 금세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맺혔고, 우리는 그 엉뚱한 고집이 우스워 낄낄거리며 장난을 쳤다. "야, 너 지금 여기서 혼자 겨울나기 하냐?" 지도를 가장 자신 있게 쥐고 있던 녀석의 안내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골목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길 잃음이 오히려 선물이었다. 낡은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가게들의 간판과 낮게 깔린 지붕들이 주는 아늑함,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현지인의 웃음소리. 목적지를 잊고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로의 서툰 방향 감각을 탓하며 걷는 발걸음은 마치 느린 재즈 곡처럼 기분 좋게 엇갈렸고, 정오의 햇살은 우리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온기를 더했다. 가오슝의 첫인상은 그렇게 조금은 엉성하고, 그래서 더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녹슨 철제 냄새와 거대한 영웅의 조우
호텔로 향하는 길, 보얼 예술특구의 광활한 거리를 가로지르자 항구에서 불어오는 옅은 소금기 섞인 바람이 뺨을 서늘하게 스쳤다. 갑자기 시야를 가득 채운 15미터 높이의 거대한 울트라맨 조형물 앞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압도적인 크기와 그 기묘한 존재감 앞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누군가 "생각보다 멍청하게 생겼는데?"라고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오래된 창고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철제의 비릿한 냄새와, 길거리 상인이 굽고 있는 달콤하고 고소한 간식 향이 묘하게 뒤섞여 흘렀다. 계획에 없던 작은 전시관에 들어섰을 때 느껴진 서늘한 에어컨 바람과 정적,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한 의미 없는 조형물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하게 생겼네"라고 말하며 가볍게 지나쳤을 뿐이다. 그런 무용한 대화들이 여행의 빈칸을 적절히 채워주고 있었고, 우리는 그 무의미함 속에서 오히려 깊은 해방감을 느꼈다. 계획된 일정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걷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는 가장 완벽한 휴식이었다.
파도의 곡선이 머무는 안식처
마침내 도착한 Cheng Shi Shang Lv의 로비에 들어서자, 도시의 딱딱한 직선들과는 대조적인 유연한 파도 모양의 곡선들이 우리를 반겼다. 그 부드러운 선들이 주는 시각적 편안함은 긴 여행의 긴장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우리가 묵은 항구 전망 객실의 문을 열자, 포근한 노란빛 조명이 마치 따뜻한 담요처럼 우리를 감싸 안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던졌고, 구름처럼 부드러운 매트리스와 베개의 촉감에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는 가오슝 항구의 투박하고도 정직한 리듬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크레인들이 느릿하게 팔을 움직이고, 육중한 화물선들이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화려한 야경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저녁에는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훠궈의 진한 육수 향을 즐겼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몸속의 남은 긴장까지 모두 풀어주었고, 잘 익은 고기를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비로소 이번 여행의 실감이 났다. 식사 후 옥상 바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검은 바다 위에 흩뿌려진 보석 같았다.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 그리고 돌아와 누울 곳이 이토록 편안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이미 성공적이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더 게으르게, 더 깊게 이 도시의 호흡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창가에 닿은 항구의 불빛이 아주 조금 따뜻했다.
- Cheng Shi Shang Lv의 항구 전망 객실에서 가오슝 항구의 정직한 야경을 감상해 보세요.
- 보얼 예술특구의 거대한 조형물 사이로 목적 없는 산책을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