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걸음의 거리, 그 안의 안도감
방 문을 열자마자 짙은 풀내음이 밀려왔다. 대만 동해안의 오래된 약초를 블렌딩했다는 리우 향수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공기 중에 아주 잘게 쪼개진 입자가 되어 코끝을 간질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짐을 내려놓았다. 캐리어 바퀴가 두툼한 카펫 위를 구르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웠고, 그 소리는 마치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작은 신호처럼 들렸다. 침대 끝에서 창가까지의 거리는 성인 남성의 보폭으로 네 걸음 정도. 그 짧은 거리 속에 묘한 긴장과 편안함이 공존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서늘한 감촉이 전해졌고, 건식과 습식이 분리된 욕실의 타일 온도는 방 안의 공기보다 조금 더 낮았다. 그 미묘한 온도 차이가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Hua Lian Lan Tian Li Chi Fan Dian의 이 정갈한 공간은 우리에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도 온전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속삭이는 듯했다. "딱 좋다," 누군가 나지막이 읊조린 혼잣말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외롭지도 않은 이 적당한 거리감이 우리를 더 깊게 연결해주고 있었다.
말 없는 대화가 흐르는 보폭
밖으로 나서자 2월의 화롄 공기가 뺨을 스쳤다. 기온은 18도. 춥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따뜻하다고 하기엔 서늘한, 딱 그 정도의 온도였다. 공기 중에는 비에 젖은 바위 냄새와 눅눅한 흙 내음이 섞여 있어, 마치 거대한 숲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장군부 1936 구역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5분이면 닿을 거리였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조금 더 늘려 걷기로 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는 여행자의 특권이었다. 그곳에서 산 금사 타로 크로와상은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바스락거리며 부서졌고, 그 틈으로 진득하고 달콤한 타로 앙금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빵의 온기가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질 때, 너는 말없이 빵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태평양의 파도가 밀려오듯 자연스럽게 닿은 배려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태평양 등불 축제의 빛 속에서 우리는 굳이 말을 섞지 않았다. 화려한 빛들이 쏟아졌지만, 우리는 그 빛을 분석하기보다 그저 그 속에 잠겨 있기를 택했다. 보폭이 어긋나면 누군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였고, 어깨가 아주 가끔 스칠 때마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저기 봐," 짧은 손짓 하나면 충분했다. 굳이 '기다려 달라'거나 '천천히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침묵은 이미 가장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정적이 머무는 자리
다음 날 아침, 호텔의 채식 조식 식당에는 정갈한 음식들이 놓였다. 특히 감칠맛 나는 채소 볶음밥의 풍미가 입안을 깨끗하게 깨웠고, 신선한 채소들의 아삭한 식감이 아침의 감각을 깨웠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었지만 대화는 많지 않았다. 너는 커피잔의 매끄러운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훑었고, 나는 갓 구운 빵의 거친 질감을 가만히 관찰했다. 식사를 마친 후,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Hua Lian Lan Tian Li Chi Fan Dian의 로비 소파에 앉아 각자의 책을 펴거나 창밖의 거리 풍경을 응시했다. 로비의 높은 층고와 은은한 조명은 우리 사이의 정적을 더욱 아늑하게 감싸 안았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반드시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진 상태.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가장 안락한 형태의 동행이었다. 로비에 흐르는 은은한 풀향기가 다시금 느껴졌다.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그 낯선 향기는 이제 2월의 습한 공기와 타로의 단맛, 그리고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웠던 정적의 기억으로 치환되어 있었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단단한 기억이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다정했다.
창밖으로 옅은 안개가 내려앉은 화롄의 거리와 내 곁의 온기가 좋았다.
- 리우 향수 패키지를 선택해 방 안의 공기를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보길 권한다.
- 장군부 1936의 금사 타로 크로와상을 사서 느린 보폭으로 등불 축제를 거닐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