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킴이라며, 생수병은 왜 세 개나 샀어?"
"야, 너 텀블러 진짜 챙겨온 거 맞아?" 지훈이 낄낄거리며 내 가방 속을 샅샅이 뒤졌다.
"당연하지! 티미오스 인이 환경 생각하는 곳이라며. 나 오늘부터 지구 지킴이로 활동할 생각이다."
"지구 지킴이가 아까 편의점에서 생수병 세 개나 샀더라? 내 눈은 못 속여. 아주 투명하게 다 보였다고."
"그건... 너무 더워서 그랬지! 창화 햇빛 봤어? 이건 그냥 빛이 아니라 거의 하얀 페인트를 들이부은 수준이라고!"
"말은 잘해. 그냥 짐 늘리기 싫어서 텀블러 챙기는 척만 한 거겠지."
"됐어. 너야말로 아까 호텔 들어올 때 땀 흘리는 꼴 보니까 지구 온난화의 주범 같더라."
우리는 서로의 모순을 끄집어내며 배꼽을 잡았다. 7월의 끈적한 열기가 셔츠 등 쪽으로 달라붙어 불쾌했지만, 그마저도 웃음 섞인 소음 속에 흩어졌다.
초록의 숨결과 정직한 온기
창화역에서 내리자마자 7월의 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왔다. 지열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거리에서 다섯 분 정도 걸어 도착한 티미오스 인의 입구는 소박했다. 1층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냉기가 구원처럼 다가왔다. 이곳은 온통 초록색이다. 1층부터 5층까지, 복도와 공용 공간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이름 모를 식물들이 뿜어내는 짙은 풀 내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 건물의 호흡을 담당하는 거대한 폐처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복도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호텔의 철학 덕분에, 방으로 향하는 짧은 통로에서 우리는 다시금 여름의 한복판으로 던져진다. 하지만 그 찰나의 열기는 방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쾌적함을 더욱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다. 우리가 선택한 8인실 도미토리는 2층 침대가 없는 구조라 오르내리는 수고 없이 안락했고, 정교하게 설계된 칸막이가 각자의 고독을 지켜주었다. 좁은 틈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나른한 빛을 보며 누워 있으면, 이곳이 호텔인지 아니면 잘 만들어진 작은 상자 속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욕실은 건식과 습식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쾌적했고, 매일 아침 발끝에 닿는 깨끗한 발 매트의 보송보송한 감촉이 기분 좋게 하루를 깨웠다. 일회용 어메니티가 없는 대신 '정직 상점'이라는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빌리거나 구매해야 했다. 누군가의 양심에 기댄 투박한 신뢰 시스템. 그 정직함이 이 공간의 공기를 결정짓는다. 아침 8시, 식당에서 제공되는 무료 조식은 소박했다. 따뜻한 흰 죽의 담백한 풍미와 갓 구운 토스트의 바삭함이 입안에 퍼질 때, 7월의 뜨거운 하루를 견뎌낼 적당한 무게의 위로를 얻은 기분이었다.
밤 11시, 캔맥주에 담긴 진심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은 1층 바, '칙' 하며 맥주 캔 따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근데 솔직히 말해봐. 우리 이번 여행에서 뭘 얻은 것 같아?"
"얻은 거 없는데. 굳이 찾자면... 피부가 좀 탔나?"
"그렇지? 나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여행이야."
"근데 아까 먹은 파파야 우유의 그 끈적하고 시원한 단맛 말이야. 그거 한 잔 마셨을 때 '아, 오길 잘했다' 싶더라."
"맞아. 내일은 뭐 할 거야? 또 그 하얀 햇빛 뚫고 돌아다닐 거야?"
"아니. 그냥 누워 있을래. 사실 누워 있는 게 이번 여행의 유일하고도 거대한 목적이었으니까."
낮의 소란함은 사라지고, 낮게 깔린 목소리들이 서로의 진심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우리는 더 이상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여행에서 의미를 찾는 일만큼 피곤한 노동은 없다. 그저 손에 쥔 맥주가 충분히 차갑고, 곁에 있는 친구의 농담이 적당히 짜증 난다는 사실. 그거면 충분했다.
창밖으로 7월의 무거운 밤공기가 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 창화 파파야 우유의 농밀하고 진한 단맛을 꼭 경험해 볼 것.
- 부이팡의 단황소는 갓 나왔을 때의 온기를 느끼며 맛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