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는 길, 티미오스 인의 복도에는 에어컨 바람이 없었다.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호텔의 고집스러운 철학 때문이라고 했다. 3월의 창화는 섭씨 20도,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온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인위적인 냉기 대신 1층부터 5층까지 곳곳에 배치된 초록색 식물들이 내뿜는 눅눅하고 싱그러운 흙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일본식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반영된 정갈한 복도를 걸으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없이 잎사귀들의 결을 훑었다. '이런 느릿한 고집이 여행을 더 여행답게 만드는 걸지도 몰라.' 나는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방 안에 놓인 세면도구는 흔한 일회용 작은 병이 아니었다. 묵직한 대용량 용기에 담긴 샴푸와 바디워시. 손가락 끝에 닿는 용기의 매끄럽고 서늘한 감촉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 투박한 진심이 오히려 낯선 곳에서의 긴장을 완화해주었다. 생수병 대신 제공된 개인 텀블러를 들고 공용 공간의 정수기로 향했다. 쪼르르, 물이 컵에 차오르는 청량한 소리와 텀블러 입구까지 물을 찰랑거리게 채우려 애쓰는 나의 서툰 모습, 그리고 그걸 가만히 지켜보는 상대의 다정한 시선. 튀어 오른 물방울 하나가 손등에 닿았지만 닦아내지 않았다. 그저 그 찰나의 정적 속에 머물고 싶었다.
근처 부이팡에서 사 온 단황수가 탁자 위에 놓였다.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밀가루 향이 방 안의 공기를 포근하게 채웠다. 한 입 베어 물자 붉은 팥소의 진한 달콤함과 노란 달걀노른자의 짭조름함이 혀끝에서 정교하게 섞였다. 과하지 않은, 딱 적당한 단맛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입가에 묻은 하얀 가루를 보며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창한 대화는 없었지만, 텀블러에 담긴 시원한 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이면 충분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며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리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초록의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에서 보낸, 더없이 평온한 오후였다.
오전 8시, 갓 구운 빵 냄새가 깨우는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창밖으로 3월의 보드라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티미오스 인의 도미토리 룸은 8인실이었지만, 침대 사이마다 세심하게 세워진 벽이 있었다. 완전한 고립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적당한 경계가 주는 안도감이 좋았다. 옆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낮게 들려왔지만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방해받지 않는 고독과 느슨한 연결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었다.
조식 시간인 8시, 1층 식당으로 내려가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죽과 노릇한 토스트, 그리고 정갈하게 담긴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스터기에서 빵이 '툭' 하고 튀어 올라오는 경쾌한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웠다.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의 바삭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뒤이어 마신 따뜻한 죽이 밤새 차가워진 위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화려한 뷔페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정성껏 준비했다는 온기가 느껴지는 소박한 차림이었다. 친절한 직원의 부드러운 인사말이 곁들여져 식탁의 온도는 더욱 높아졌다.
식사를 마치고 창화역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숙소에서 역까지는 아주 가까워, 걷는 내내 3월의 공기를 온전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춥지 않았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 앞서가려 하지 않았고, 누군가 뒤처지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란히 맞춘 보폭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이곳의 숨겨진 맛집인 면선과 고기 수프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이 도시의 소박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낯선 곳에 와서, 다른 밀도의 공기를 마시고, 다른 온도의 물을 마셨을 뿐이다. 하지만 숙소 곳곳을 채웠던 초록색 잎사귀들과 아침의 구수한 죽 냄새, 그리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당신의 일정한 보폭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 모여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된다는 것을, 이 작은 도시의 다정한 숙소에서 배웠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우리는 아마 지금처럼 느릿하게, 서로의 속도를 닮아가며 걷고 있을 것이다.
창화의 낮은 바람 속에 우리의 보폭이 나란히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