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자정
11월의 수아오는 서늘한 공기가 피부 끝을 스치는 계절이었다. Yan Bo Da Fan Dian Su Ao Si Ji Shuang Quan Guan의 객실 안은 아늑한 온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방금 전까지 탄산수소염천의 미끄러운 물결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피부 위에 얇은 비단 한 겹을 덧바른 듯 매끄러운 감촉이 온몸을 감쌌고, 욕실을 채운 뽀얀 수증기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온기가 채 가시기 전, 침대 위로 몸을 던진 찰나 누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배가 고프다고. 그 한마디에 정적은 깨졌고, 우리는 홀린 듯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복도의 두툼한 카펫이 발소리를 눅눅하게 집어삼키는 소리를 들으며 로비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난팡아오 항구에서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뺨을 차갑게 때렸지만, 그 서늘함이 오히려 잠들어 있던 식욕을 깨웠다. 편의점에서 집어 든 땅콩 롤 아이스크림과 이름 모를 현지 과자들, 그리고 손끝을 데워줄 따뜻한 캔 음료. 돌아오는 길, 비닐봉투가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우리만이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신호처럼 느껴졌다.
바스락거리는 봉투 속에 담긴 진심들
방으로 돌아와 조명을 낮추자, 공간은 은은한 호박색 빛으로 물들었다. 침대 위에 편의점 봉투를 쏟아놓자 알록달록한 포장지들이 꽃잎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닥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야, 아까 칠성령 계단 천삼백 개 오를 때 너 표정 진짜 가관이었어. 거의 영혼이 가출한 수준이었다니까?"
친구가 낄낄거리며 땅콩 롤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하고 진한 땅콩 향이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를 채웠다.
"말도 마. 난 그때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수아오 만의 전경은 정말 압권이었지. 그 뾰족한 곶의 모양이 지도에서 본 그대로더라고."
"정확한 게 무슨 상관이야. 내려올 때 너 거의 기어 내려왔잖아."
우리는 서로의 멍청했던 순간들을 안주 삼아 씹어 돌렸다. 누가 더 처절하게 헉헉거렸는지, 누가 더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는지에 대해 유치한 토론이 이어졌다. 사실 그런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Yan Bo Da Fan Dian Su Ao Si Ji Shuang Quan Guan의 객실이 주는 적당한 온도가 우리를 무장해제 시켰을 뿐이다.
"근데 여기 냉온천 진짜 대박이지 않냐? 피부가 정말 보들보들해진 기분이야."
"맞아. 아까 냉천 공원에서 느꼈던 그 소름 돋는 차가움 뒤에, 여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까 혈관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이더라고. 이 온도 차이가 주는 쾌감이 진짜 중독적이야."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다. 거창한 인생의 진리나 무거운 고민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오늘 먹은 음식의 맛과, 내일은 어느 곳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가벼운 조각들이었다. 캔 음료의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심장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포만감이 남긴 고요한 여운
어느덧 봉투는 비었고, 왁자지껄하던 이야기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없이 각자의 침대로 몸을 던졌다. 몸이 깊숙이 파묻히는 포근한 침구의 감촉이 마치 거대한 구름 위에 누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방금 전까지의 소란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파도 소리가 밀물처럼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행의 진짜 얼굴은 이런 것이 아닐까. 유명한 랜드마크를 정복하고 화려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새벽 두 시에 바닥에 주저앉아 정체불명의 과자를 나눠 먹으며 낄낄거리는 일.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무용한 시간들. 그 사소하고 덧없는 안락함이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창밖의 수아오 만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 어둠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차단해 주는 안전한 벽처럼 느껴졌다. 내일은 아마 늦잠을 잘 것이다. 조식을 늦게까지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보다 더 큰 위안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깊고 푸른 잠의 바다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참으로 다정한 밤이었다.
방 안의 작은 스탠드 불빛이 서서히 꺼지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 난팡아오 항구 근처의 땅콩 롤 아이스크림: 고소함과 달콤함의 조화가 일품인 야식.
- 수아오 현지 마켓의 말린 과일 칩: 쫀득한 식감이 밤늦은 대화의 리듬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