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치함을 묵묵히 견뎌낸 다섯 가지 증거물들
하얀 침대 시트: 빳빳하게 다려진 고밀도 면의 서늘한 촉감과 은은한 세제 향. 228 연휴의 지독한 교통 체증 속에서 누가 더 효율적인 경로를 제안했는지를 두고 벌인 유치한 논쟁의 전장이었다. "내 말이 맞다니까!"라고 소리치며 베개를 던지던 순간들. 결국 아무도 맞지 않았지만, 시트 위에 대자로 뻗어 뒹굴며 웃던 기억은 뽀송뽀송한 감촉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나노 밀크 배스 욕조: 피부에 비단 한 겹을 바른 듯 미끈거리는 우윳빛 물의 질감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증기. 뜨거운 물속에서 시작된 대화는 회사 상사에 대한 가벼운 투덜거림에서 시작해, 어느덧 삶의 허무함과 반출생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찰로 이어졌다. "우리는 왜 태어난 걸까?"라는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을 때, 물이 식어갈 때쯤 찾아온 정적은 오히려 안온했다.
구이산섬이 보이는 통창: 3월의 바다는 회청색에서 서서히 옅은 에메랄드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의 작은 점이 배인지, 고래인지, 아니면 그저 시력의 한계인지 내기를 걸며 낄낄거리던 시간. 창문에 이마를 대면 느껴지던 서늘한 온도가 기억난다. 짠 내 섞인 바닷바람이 창밖에서 소리 없이 몰아치고, 바다는 말없이 우리의 소란을 받아내고 있었다.
호텔의 오리 구이 접시: 코끝을 찌르는 바삭한 껍질의 고소한 향과 입안에서 터지는 진한 육즙의 풍미.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껍질을 두고 벌어진 무언의 눈치 싸움은 웬만한 첩보전보다 치열했다. "딱 한 입만!"이라는 애원이 빗발쳤고, 결국 가위바위보라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승패가 갈렸을 때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짭조름한 맛은 정확히 우리의 허기를 채웠다.
루프탑 바의 라탄 의자: 엉덩이에 닿는 거칠고 서늘한 질감과 밤공기의 서늘함. 마조 행렬을 따라 걷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뻗고, 칵테일 잔 속의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청량한 소리를 듣던 순간. "그냥 이렇게 계속 있으면 좋겠다"라는 혼잣말이 공중에 흩어졌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던, 짙은 남색의 밤이었다.
이 방의 가구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고발한다면
아마 이 방의 가구들은 우리를 '적당히 소란스럽고 사랑스럽게 무용한 인간들'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란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 낯선 천장을 보고, 일상의 중력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Lan Yang Wu Shi Gang Hai Jing Jiu Dian의 넓고 쾌적한 객실은 우리의 무질서함을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누군가는 체크인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고, 누군가는 야외 수영장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3월의 바람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온도로 우리 사이의 빈틈을 채웠다. 길가에 흩날리는 하얀 오동나무 꽃잎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봄의 신호인지 아니면 그저 자연의 낭비인지에 대해 짧게 토론했다. "낭비면 좀 어때, 예쁘잖아."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그 무용한 대화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대화의 주제는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 흐름 속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이 닿아 있었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하지만 함께 누워 천장의 무늬를 세던 그 시간이, 어떤 화려한 관광지보다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서로의 못난 점을 전시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관계.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아니, 충분했다.
창밖의 구이산섬이 조금 더 가까워 보였던, 나른한 오후였다.
- 루프탑 바에서 일몰 시간에 맞춰 구이산섬의 실루엣을 바라보는 것을 추천한다.
- 호텔 내부 식당의 오리 구이 세트는 껍질의 식감이 훌륭하니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