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밖에서 마주친 다섯 가지의 조각들
새벽 일출 내기의 처참한 패배. 누가 가장 먼저 일어나 창밖의 해돋이를 보는지 내기를 했지만, 결과는 전원 패배였다.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방 안은 이미 정오에 가까운 눈부신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면 시트의 서늘한 감촉과 몽롱한 정신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의 헝클어진 얼굴을 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아, 진짜 다 잤네"라는 허탈한 웃음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억지로 깨어나 찬 바람을 맞는 대신 누린 이 나른한 패배감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성취처럼 느껴졌다.
나노 우유욕이 준 낯선 매끄러움. Lan Yang Wu Shi Gang Hai Jing Jiu Dian의 욕조에 몸을 담그자, 하얀 우윳빛 물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단순히 따뜻하다는 느낌을 넘어, 아주 얇은 비단 한 겹을 정성스럽게 바른 것 같은 미끄러운 저항감이 피부 끝에 닿았다. 1월의 짠 바닷바람에 거칠어졌던 살결이 온기와 함께 유순해지는 기분이었고, 욕실 가득 퍼지는 은은한 비누 향이 마음의 긴장까지 녹여내렸다. 욕조 밖으로 나왔을 때 닿은 서늘한 공기와 피부에 남은 눅눅한 온기의 대비가 선명해, 가만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충분히 쓰이고 있다는 충만함이 밀려왔다.
겨울의 허기를 채운 로스트 덕의 온기. 저녁 식사로 마주한 로스트 덕 세트는 정직하고도 강렬했다. 얇고 바삭하게 튀겨진 껍질을 깨무는 순간 경쾌한 소리가 났고, 그 아래 숨어 있던 진한 육즙이 입안 가득 풍미를 퍼뜨렸다. 친구 녀석과 마지막 껍질 한 점을 두고 유치하게 실랑이를 벌였지만, 곧이어 찾아온 물리적인 포만감은 우리를 다시 다정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코스 요리는 아니었지만, 식탁 위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대화들이 얼어붙었던 마음의 틈새를 촘촘하게 메워주었다.
루프탑 유리 온실 속의 고요한 관조. 호텔 꼭대기의 경관 바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바깥의 거친 풍경을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는 요새 같았다. 밖에는 1월의 매서운 바람이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지만, 내부에는 칵테일 잔 속에서 얼음이 챙그랑거리며 부딪히는 규칙적인 소리만이 평화롭게 울려 퍼졌다.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잔을 기울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세상을 관조하는 무용한 시간, 그 해방감이 주는 쾌적함이 우리 사이의 침묵을 기분 좋게 채웠다.
침대 높이에서 마주한 거북섬의 침묵. 고층 해경 객실의 침대에 완전히 누웠을 때, 시선은 정확히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북섬의 능선과 맞닿았다. 1월의 짙은 안개가 섬의 윤곽을 지웠다 나타나게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 섬은 매일 저런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푹신한 매트리스의 탄성에 몸을 맡긴 채, 아무런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회색 돌덩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단한 깨달음은 없었지만, 섬이 거기 있고 내가 여기 누워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오후의 공기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흩어진 순간들이 모여 파도가 될 때
사실 이번 여행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라는 이유로 짐을 쌌고, Lan Yang Wu Shi Gang Hai Jing Jiu Dian이라는 안식처를 골랐을 뿐이다. 빡빡한 일정표 대신 늦잠과 온욕,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단순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 60%의 힘만 쓰며 보낸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 무언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저 존재함으로 충분한 시간들이 겹쳐지자 마음 한구석이 눅눅하게 따뜻해졌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사치스러운 즐거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보며 깨달았다.
호텔의 조명이 켜진 밤바다는 짙은 남색의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 투청역에서 호텔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미리 예약하면 이동이 훨씬 수월하다.
- 조식 뷔페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많으니, 전날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