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지 않다던 이의 은밀하고 달콤한 배신
11월의 타이둥은 피부에 닿는 공기가 기분 좋게 서늘했다. 얇은 가디건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Tai Dong Xi Lai Deng Jiu Dian 로비를 나섰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스치는 것은 눅눅하면서도 활기찬 밤공기, 그리고 바로 앞에 펼쳐진 타이둥 관광 야시장의 소란스러운 열기였다. 위치가 좋다는 말은 결국 걷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석에 이끌리듯 야시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분명 누군가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고 단언했지만, 정작 그의 손에는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치 묶음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묻는 대신, 눈앞에서 지글거리는 튀김의 기름진 냄새와 숯불의 매캐한 향에 몸을 맡겼다. 비닐봉투 두 개가 묵직해질 때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11월의 밤바람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선명했고, 방으로 돌아와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어내자 시내의 불빛이 낮은 파도처럼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우리는 빳빳하게 정돈된 하얀 시트를 과감히 걷어내고, 그 위에 야시장에서 쟁취한 전리품들을 무질서하게 펼쳐놓았다.
바삭한 튀김 소리에 섞인 무용한 진심들
"야, 너 아까 분명히 배 안 고프다며. 근데 왜 꼬치는 네가 제일 많이 샀냐?"
한 친구가 입가에 기름기를 묻힌 채 튀김을 바삭하게 씹으며 툭 던졌다. 나는 대답 대신 짭조름한 양념이 배어든 꼬치를 하나 더 집어 들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원래 여행의 정석은 배가 안 고파도 먹는 거야. 이건 타이둥의 법 같은 거라고.
"
우리는 킥킥거리며 좁은 테이블 대신 넓은 침대 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Tai Dong Xi Lai Deng Jiu Dian의 가족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포근했다. 몸이 깊숙이 파묻히는 고급스러운 침구의 감촉과 그 위에 흩뿌려진 야시장의 소박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5성급 호텔의 정갈한 인테리어 속에 스며든 시장통의 냄새가 오히려 우리를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근데 여기 방 진짜 넓다. 내 자취방보다 넓은 것 같아.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될까?"
"꿈 깨.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체크아웃이야. 그나저나 이 튀김 진짜 예술이다. 너희도 빨리 먹어봐."
특별한 주제 없는 대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장난감에 대한 뒤늦은 후회, 예전 학교의 괴짜 선생님 이야기, 그리고 내일 아침 우리를 기다릴 알릴리 뷔페의 메뉴에 대한 기대감까지.
"내일 조식에 해산물 죽이랑 미타이모가 나온다는데, 그게 진짜 별미래. 우리 내일 7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글쎄, 내 생각엔 9시는 되어야 눈 뜰 것 같은데. 넌 항상 너무 낙관적이라니까."
서로를 가볍게 깎아내리는 말들이 오갔지만,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온기가 배어 있었다. 젓가락이 비닐봉투를 긁는 서걱거리는 소리, 낮은 웃음소리, 그리고 가끔 창밖에서 들려오는 먼 경적 소리가 섞여 방 안을 촘촘하게 채웠다. 우리는 은은한 황금빛 조명 아래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들을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의 온기
음식들이 사라지고 비닐봉투에는 작은 찌꺼기들만 남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말을 멈췄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침묵이라기보다, 충분히 마음을 쏟아냈다는 안도감에 가까운 신호였다. 한 명씩 깊은 하품을 하며 구름 같은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피부에 닿는 시트의 감촉은 매끄럽고 시원했다. 11월의 서늘한 외기와 에어컨의 일정한 웅성거림이 섞여 쾌적한 온도를 만들어냈다. 방금까지의 소란이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방 안은 빠르게 정적의 바다에 잠겼다.
천장의 조명을 끄자 짙은 어둠이 밀려왔지만,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커튼 틈새로 스며든 도시의 잔광이 방 안의 윤곽을 희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규칙적이고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여행이란 결국 대단한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내일 아침이면 뜨거운 소고기탕과 해산물 죽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잠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젖은 수건을 정리하고 마지막 불을 껐다. 모든 것이 충분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심되는 음악이었다.
- 타이둥 야시장의 불향 가득한 숯불 꼬치와 바삭한 대만식 튀김
- 철화마을 산책 후 즐기는 달콤하고 진한 현지 밀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