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층의 높이, 그 사이를 메우는 서늘한 공기
마르키스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발바닥을 부드럽게 감싸는 카펫의 적당한 두께감이었다. 18층이라는 높이는 지상의 소음을 지워냈고, 그 빈자리를 에어컨의 낮은 기계음과 서늘한 공기가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창가와 침대 끝, 서로 다른 지점에 멈춰 섰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타이둥 시내는 8월의 눅눅한 열기에 휩싸여 아스라이 흐릿했지만, 고층 객실만이 누릴 수 있는 탁 트인 시야 끝에는 푸른 태평양의 수평선이 얇은 선으로 걸려 있었다.
소파에서 침대까지는 겨우 다섯 걸음. 하지만 그 짧은 거리조차 우리는 아주 천천히, 마치 물속을 걷듯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지금 이 거리면 충분할까' 하는 내면의 물음이 공중에 흩어졌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딱 그만큼의 거리. 창밖의 도시 불빛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나란히 섰다. 어깨가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얇은 옷감 너머로 서로의 체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Tai Dong Xi Lai Deng Jiu Dian의 이 정갈한 공간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부피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안도감이 우리를 비로소 편안하게 만들었다.
말 없는 식탁 위로 피어오른 다정한 이해
다음 날 아침, 아리하이 뷔페의 공기는 활기찬 소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 앉은 작은 테이블만큼은 마치 투명한 막이 쳐진 것처럼 고요했다. 갓 끓여낸 해산물 죽의 짭조름하고 구수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그 뒤를 이어 진한 커피 향이 섞여 들었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고기 탕 그릇을 내 쪽으로 천천히 밀어주었다. 하얀 김이 우리의 시야를 잠시 가린 찰나, 나는 그가 나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을 읽었다. 고맙다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숟가락을 들어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셨을 뿐이다. 혀끝에 닿는 깊고 진한 육수의 맛이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기분이었다.
타이둥의 지역색이 짙게 배어 있는 미타이무를 한 입 베어 물자, 쫀득한 식감이 입안 가득 머물렀다. 우리는 서로의 접시에 무엇이 담겼는지 힐끗거렸지만, 굳이 권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각자의 속도로 씹고, 각자의 리듬으로 삼키는 시간. 그것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가장 정중한 방식의 대화였다. 식사를 마치고 Tai Dong Xi Lai Deng Jiu Dian의 로비를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8월의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공기였지만 싫지 않았다. 호텔 바로 앞 야시장의 소란스러운 외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철화촌까지 걷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각자의 고요함
방으로 돌아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쏴아아,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욕실의 타일 벽을 타고 공명하며 울려 퍼졌다. 몸을 깊숙이 담그자 낮 동안의 피로가 피부 표면에서부터 천천히 녹아내렸다. 호텔 어메니티의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습한 증기와 섞여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눈을 감고 물의 온도와 내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적당히 뜨겁고 충분히 부드러운 감촉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거실에서는 그가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고요 속에 머물렀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나의 낮은 숨소리만이 이 공간의 밀도를 채웠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상태. 그것은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지독하게 평온한 안도감이었다. 굳이 말을 걸어 이 완벽한 적막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상대가 저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는 충분히 따뜻했다. 젖은 몸을 닦고 나왔을 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아주 짧게, 하지만 깊게 웃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더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도시의 불빛이 창문에 번지고,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 호텔 정문에서 도보 5분 거리인 철화촌의 밤 산책을 추천합니다.
- 아리하이 뷔페의 현지식 조식으로 타이둥의 아침을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