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첫 내기는 '누가 가장 먼저 늦잠을 잘 것인가'였다.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뻔했다. 셋 다 알람을 무심하게 껐고, 정오의 햇살이 방 안 깊숙이 침범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선다오사역 3번 출구에서 Tai Bei Shi Dai Yu Suo까지 걷는 시간은 고작 2분. 지도를 켤 필요조차 없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 길 끝에서 마주한 로비의 공기는 적당히 서늘하고 정중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1층 스타벅스에서 갓 뽑아낸 라떼의 뜨거운 김이 안경알에 하얗게 서렸다. 11월의 타이베이는 21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따뜻한 음료 한 잔이 정당한 명분이 되는 날씨. 함께 산 현지 과자는 혀끝에 달라붙을 만큼 지나치게 달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입안에 남은 끈적한 단맛과 쌉쌀한 커피의 조화가 꽤 정확한 위로가 되었다.
"너 분명히 헬스장 간다고 했잖아." 친구가 내 등을 툭 쳤다. 24시간 운영되는 헬스장 입구를 세 번쯤 지나쳤을 때였다. 우리는 결국 그 세련된 입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오늘의 운동을 대신하기로 합의했다. 무용한 결정이었지만, 그 합의 과정에서 터져 나온 웃음이 즐거웠다. 억지로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자유가 그곳에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옷가지들이 자로 잰 듯 각 잡혀 정리되어 있었다. 버틀러 서비스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세심했다. 마치 누군가 내 삶의 무질서를 잠시 대신 정리해 준 기분이었다. 우리는 양말 한 짝이 완벽하게 짝을 맞춰 접혀 있는 것을 보고, 누가 더 엉망으로 옷을 벗어놓나 내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호텔 직원의 정돈 능력이 우리의 게으름을 압도하며 승리했다.
오후 네 시. 꿀처럼 진득한 햇살이 침대 끝자락에 비스듬하게 걸쳤다. 우리는 그냥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타이베이의 소음이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누군가 길게 하품을 했고, 누군가는 바스락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렇게 밀도 높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Tai Bei Shi Dai Yu Suo의 수건은 놀라울 정도로 두껍고 묵직했다. 피부에 닿는 촉감이 비단처럼 매끄러웠고, 로비에서부터 은은하게 풍기던 샌달우드 향이 욕실의 깨끗한 비누 냄새와 섞여 들었다. 욕실과 침실 사이의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비치는 실루엣, 그리고 발바닥에 닿는 카펫의 푹신함이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었다. 공간이 주는 안락함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산도 없이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그냥 맞았다.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호텔로 돌아와 두툼하고 보드라운 가운을 걸쳤을 때의 그 쾌적함이란. 젖은 신발을 현관에 던져두고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이번 여행의 목적이 오직 이 장면 하나였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단한 깨달음을 얻지도, 유명한 명소를 모두 섭렵하지도 않았다. 그저 잘 먹고, 깊게 자고, 서로의 게으름을 다정하게 비웃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아마 우리는 또 헬스장 앞을 서성이며 쓸데없는 내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소한 반복이 우리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일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샴푸 향.
- 선다오사역 3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되는 동선을 이용해봐.
- 1층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라떼 한 잔 들고 로비를 관찰하는 걸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