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공기 속에서 맞춘 보폭
샨다오쓰역 출구를 나서자마자 2월의 타이베이가 눅눅한 숨결로 우리를 맞이했다. 기온은 16도 정도였지만, 피부에 닿는 습한 냉기는 수치보다 훨씬 서늘하게 옷깃 사이를 파고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붙어 걸었다. 스칠 때마다 느껴지는 어깨의 온기가 낯설면서도 안심이 되어, 아무도 먼저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길가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조식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갓 튀겨낸 요우티아오의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따뜻한 두유의 향기와 섞여 공중에 흩날렸다. "조금만 더 걷다 들어갈까?"라는 짧은 물음에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외투에서 배어 나오는 희미한 세제 냄새가 이 눅눅한 도시의 공기를 견딜 만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걷는 그 짧은 거리 동안,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어떤 리듬을 아주 조금은 배운 것 같았다.
무채색의 정적이 주는 안도감
Tai Bei Shi Dai Yu Suo 로비에 들어선 순간, 외부의 끈적한 습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교하게 조절된 24도의 쾌적한 공기가 피부에 닿자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마음이 비로소 느슨해졌다. 이곳의 내부는 현대적인 직선과 절제된 무채색의 톤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정돈된 쾌적함이 먼저 다가왔고, 과하지 않은 친절함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은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했다. 객실의 문을 열었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침구의 깨끗한 향기와 매끄러운 바닥의 감촉이었다. 특히 욕실과 샤워실이 분리된 구조 덕분에 각자의 시간을 존중받으면서도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색깔이 없는 무채색의 공간이었기에, 오히려 그 안에 머무는 우리라는 색깔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는 무언가 애써 증명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저 이 정갈한 공간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음이 걷힌 뒤에야 들리는 숨소리
밤이 되자 우리는 타이베이 등불 축제의 화려한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수많은 인파의 물결 속에서 서로의 손목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쏟아지는 빛의 향연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방의 전등을 끄자, 창밖의 도시 소음이 먼 파도 소리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오직 작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이 방 구석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호텔의 침대는 생각보다 더 깊고 포근해, 마치 거대한 솜사탕 속으로 천천히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낮에는 어깨가 닿을까 말까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었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시각 대신 청각이 예민해졌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상대의 숨소리, 옷감이 스치는 작은 마찰음. 그 작은 소음들이 방 안의 정적을 촘촘하게 채웠고, 우리는 그 정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만의 작은 섬이 된 방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의 피부는 보송보송했다. Tai Bei Shi Dai Yu Suo 의 두툼하고 부드러운 타월이 몸의 물기를 빠르게 흡수했고, 적당한 온도의 공기가 포근하게 살결을 감쌌다. 우리는 침대 헤드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억지로 '행복하자'거나 '힘내라'는 식의 거창한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 이 방의 적절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가락 끝을 아주 살짝 맞대어 보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기였다. 완벽한 관계라는 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때로는 박자가 어긋나 서툴게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한 방에서 서로의 존재를 가만히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여행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월의 타이베이는 여전히 춥고 습했지만, 이 방 안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안전한 우리만의 작은 섬 같았다.
창밖으로 희미한 도시의 불빛이 일렁였고, 우리는 그대로 잠들었다.
- 샨다오쓰역 근처 로컬 가게에서 따뜻한 두유와 요우티아오를 맛보세요.
- 등불 축제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호텔의 포근한 침구 속에서 휴식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