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우리에게. 기억나니? 타이베이의 젖은 아스팔트 냄새와 숨 막히던 습도. 야심 차게 짠 계획보다 호텔 방 안에서 보낸 무의미한 시간이 사실은 가장 좋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
5년 뒤에도 선명히 떠오를 찰나의 조각들
물속에서 마주한 회색빛 하늘. 루프탑 수영장의 물은 피부에 닿자마자 서늘한 전율을 일으켰어. 6월의 타이베이 하늘은 낮게 내려앉은 무거운 회색이었는데, 물속에서 숨을 참고 위를 보면 그 색이 묘하게 섞여 들어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 칵테일 잔 속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청량한 소리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이 섞이던 그 온도와 습도, 정말 완벽했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던 하얀 시트. 시먼딩의 인파 속에서 기운이 다 빠진 채 돌아왔을 때, 리젠트 타이베이의 침대는 마치 거대한 구름 속에 파묻히는 기분이었어. 발가락 끝에 닿는 바스락거리는 고밀도 면의 서늘한 촉감과 은은한 세탁 향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눕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침묵에 빠졌지. 그 정적이 오히려 어떤 대화보다 더 쾌적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야.
물향이 섞인 정제된 공기. 무란 스파에 들어섰을 때 코끝을 스치던 그 특유의 차분한 아로마 향기가 기억나. 바깥의 끈적이는 습기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정제되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순간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우리가 나누었던 실없는 농담들이 가볍게 흩어지던 그 평온한 시간이 그리워질 것 같아.
입안에서 녹아내리던 금빛 망고. 8개의 세련된 레스토랑을 갖춘 이곳에서 우리가 선택한 최고의 미식은 단연 망고였어. 접시 위에 정갈하게 놓인 망고의 진한 노란색은 마치 작은 태양 같았지.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혀끝에 닿는 농밀한 단맛과 차가운 과육의 질감은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완벽했어. 우리는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것이 음식 선정이라는 사실에 킥킥거리며 합의했었지.
5년 뒤에 이 기록을 다시 열어본다면
아마 우리는 그때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돌아다니려 했는지 의아해할지도 몰라. 졸업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무언가 특별한 성취나 경험을 해야 한다는 불안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리젠트 타이베이의 로비에서 누가 충전기를 챙겼는지 두고 유치하게 다투던 모습과, 에어컨 바람 아래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오후의 나른함일 거야.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던 그 무용한 시간들이 사실은 우리를 가장 깊게 연결해주었고, 가장 편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 눅눅한 여름의 기억이 이 글을 통해 다시금 서늘하고 달콤하게 되살아나길 바라.
대리석 벽에 기대어 세워진, 아직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산 하나.
- 해 질 녘 루프탑 수영장에서 타이베이의 스카이라인을 가만히 관찰해 볼 것
- 조식 뷔페에서 가장 천천히, 아무 생각 없이 식사의 질감에 집중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