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허기는 누구의 잘못인가
타이베이의 4월은 눅눅한 수건처럼 피부에 달라붙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거리의 녹나무들이 뿜어내는 짙은 풀 내음과 미지근한 밤바람이 섞여 묘한 무게감을 만들던 시간. 우리는 리젠트 타이베이의 정갈한 로비에 들어서며, 은은하게 퍼지는 백합 향기와 정중한 직원들의 환대를 받는 순간 이번 여행만큼은 절제하며 우아하게 보내자고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체크인 후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무너졌다. 누군가 나지막이 배가 고프다고 읊조린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근처 편의점과 야시장 거리로 흩어졌다.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 봉투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경쾌하게 울렸다. 웅장한 회전문을 지나 다시 마주한 호텔의 정교한 분위기와 내 손에 들린 기름진 닭튀김 봉투의 이질감. 그 간극이 우스워 우리는 일부러 더 당당하게 걸었다. 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공간에 우리의 무질서함을 조금 섞어 넣고 싶었다.
바삭한 소음 속에 섞인 진심들
"야, 너 아까까지만 해도 다이어트한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어?"
침대 위에 커다란 신문지를 깔고 갓 튀겨낸 닭강정과 달콤한 밀크티를 늘어놓았다. 친구 하나가 닭다리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웅얼거렸다.
"이 호텔 침대가 너무 푹신해서 그래. 몸이 지나치게 편안하니까 뇌가 보상 심리로 고칼로리를 원하는 거라고. 이건 과학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네 식탐이 과학인 거겠지."
우리는 낄낄거리며 서로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지적했다. 리젠트 타이베이의 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 튀김의 바삭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쫀득한 타피오카 펄이 씹히는 밀크티의 진한 달콤함이 입안에 퍼질 때마다 낮 동안의 긴장이 기분 좋게 풀려나갔다.
"솔직히 이런 고급스러운 방에서 이렇게 먹는 거, 좀 죄책감 안 들어? 여기 스파 센터랑 루프탑 수영장까지 다 갖춘 곳이라며."
"죄책감은 무슨. 우리가 낸 숙박비에 이 야식을 즐길 권리도 포함된 거야. 원래 이런 완벽한 공간일수록 조금은 망가뜨리는 맛이 있는 법이지."
우리는 한참 동안 인생의 가장 무용한 결정들에 대해 떠들었다. 대학 시절의 엉뚱한 선택이나 전 연인에게 보낸 흑역사 같은 것들.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간 속에서 우리는 가장 투박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튀김 부스러기가 흰 시트 위로 몇 개 떨어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짭짤한 맛과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충분했다.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의 온기
봉투는 비워졌고, 뜨거웠던 대화도 어느덧 잦아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빳빳하게 다려진 고밀도 면 시트의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창문을 아주 조금 열어두자, 타이베이의 습한 밤바람이 얇은 커튼을 밀어내며 들어와 방 안의 기름 냄새를 조금씩 걷어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흐릿해질 때쯤, 방금까지의 소란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공간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 들어왔을 때의 낯설고 딱딱한 정적이 아니었다. 서로의 체온과 웃음소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헐거워진 편안함이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굳이 대단한 명소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그냥 좋은 곳에 누워 좋아하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는 것. 그것으로 이번 여행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억지로 힘낼 필요도, 특별한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좋았으니까 좋았다.
옅은 오렌지빛 스탠드 조명 아래, 나란히 놓인 빈 컵들이 정겹다.
- 타이베이 거리의 쫀득한 큐브 스테이크와 시원한 버블티 조합
- 편의점의 부드러운 달걀 샌드위치와 따뜻한 우롱차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