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얇은 커튼 사이로 직사각형의 햇살이 바닥에 내려앉아 금빛 조각을 만들던 시간
리젠트 타이베이의 객실은 도시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한 하나의 거대한 고요의 섬 같았다. 발걸음을 묵직하게 잡아먹는 두툼한 카펫의 촉감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고, 그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소란함이 한 겹 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 위로 몸을 던졌다. 피부에 닿는 면의 감촉은 차갑지 않고 보송했으며, 갓 세탁한 린넨 특유의 깨끗하고 서늘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에어컨의 쾌적한 냉기와 창가에서 스며드는 나른한 온기가 몸 위에서 묘하게 교차했다. 옆에 누운 이의 고른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우리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 누군가 나지막이 뱉은 말에 우리는 대답 대신 천장의 무늬를 세기 시작했다.
4월의 타이베이는 공기가 눅눅하고 부드러워, 창밖 중산구의 풍경이 마치 물에 젖은 수채화처럼 희미하게 번져 보였다. 커튼을 여는 법을 몰라 5분 동안 낑낑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누워버린 그 무용한 시간. 하지만 그 찰나의 웃음과 정적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밀도 높은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안도감이 우리 사이의 빈틈을 포근하게 채웠고, 그제야 비로소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왔음을 실감했다.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니 조금 귀찮았지만,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하지만 아주 강렬하게 스쳐 지나갔다.
오전 6시 30분, 1층 식당에 갓 볶은 커피의 고소한 향기가 새벽 안개처럼 낮게 퍼지던 시간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내려간 식당은 차분한 공기와 낮은 말소리로 가득했다. 직원이 건네준 따뜻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컵의 온기가 손가락 끝을 타고 심장까지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니, 자극적이지 않은 정직한 온기가 빈속을 부드럽게 채우며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접시 위에 놓인 짭조름한 밑반찬들의 다채로운 색감이 아침의 생기를 더했다. 우리는 서로의 접시에 정성스레 음식을 덜어주며, 오늘 어디를 갈지 혹은 아무 데도 가지 않을지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해방감은 그 어떤 정교한 일정보다 달콤하게 다가왔다.
식사 후에는 물란 스파로 향했다. 따뜻한 물속으로 몸을 천천히 밀어 넣었을 때, 피부에 닿는 온도는 정확히 내 몸의 긴장을 해체할 만큼 적당했다. 은은한 아로마 오일 향이 공기 중에 부유했고, 물결이 몸을 감싸는 감각은 마치 태초의 안식처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물 온도, 정말 딱 좋다." 짧은 한마디에 담긴 안도감과 나른함. 이후 루프탑 수영장에서 바라본 타이베이의 아침 하늘은 투명한 푸른색이었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씻고 나와 두툼한 가운을 걸쳤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은 잊기 어려울 것 같다. 리젠트 타이베이의 로비를 걸어 나올 때, 4월의 습기를 머금은 녹나무 잎들이 짙은 초록색으로 반짝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 생경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흰 시트 위에 나란히 누워 함께 천장을 바라보던 그 아늑한 정적이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