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산 안 가져왔냐고!"
"야, 진짜 누가 우산 안 가져왔냐?" 지수가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분명히 챙기라고 했잖아!" 민호가 억울한 듯 젖은 티셔츠를 펄럭이며 맞받아쳤다.
"계획? 여행은 원래 길 잃고 비 맞는 맛에 오는 거 아니었어?"
"그건 낭만주의자나 하는 소리고, 지금 내 앞머리 떡진 거 안 보여? 이게 다 네 탓이야!"
우리는 서로의 엉망진창인 몰골을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6월의 타이베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대신 끈적한 습기로 짓눌렀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호텔까지 걷는 그 짧은 거리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테스트했다. 누가 더 덜 젖었는지를 두고 유치한 내기를 했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는 눅눅하게 젖은 빨래처럼 변해 있었다. 공기 중에는 비릿한 흙내음과 도시의 매연이 섞여 있었고,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는 마치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감싼 듯 무거웠다.
습기 속에 세워진 건조한 섬
Luo Qi Da Fan Dian Zhong Xiao Guan의 객실 문을 닫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음과 끈적임이 거짓말처럼 단절되었다. 에어컨이 뿜어내는 서늘한 냉기가 땀에 젖은 목덜미와 손목에 닿자, 비로소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빳빳하고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바닥에 무심하게 흩어진 캐리어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신발들이 우리가 이 낯선 도시의 안식처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 방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단연 깊고 묵직한 욕조였다. 최근의 많은 호텔들이 공간 효율을 위해 욕조를 과감히 없애는 추세라는데, 이곳은 여전히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너른 안식처를 품고 있었다. 수전을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지며 하얀 김이 몽글몽글 솟아올랐고, 욕실 안은 금세 따뜻한 수증기로 가득 찼다. 물속에 잠긴 귀로는 창밖 명요백화점 인근의 요란한 경적 소리가 아득한 파도 소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교차하는 지점, 그 극명한 온도 차가 주는 쾌적함은 하루 종일 걷느라 팽팽하게 당겨졌던 종아리 근육과 날카로워진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적당한 조도가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굳이 무언가를 더 채울 필요 없이, 그저 누워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젖은 옷을 말리고, 비에 젖어 눅눅해진 마음까지 함께 말리는 시간. 이곳은 습한 도시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건조한 섬 같았다.
망고의 단맛과 낮은 고백
"졸업하면 진짜 뭐 해 먹고 살까." 민호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낮게 읊조렸다.
"글쎄. 그냥 적당히 다니겠지. 꼭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아도 괜찮잖아."
"넌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모든 게 별거 아니라고."
"사실이잖아.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지금 이 망고가 얼마나 달콤한지가 훨씬 더 중요해."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제철 망고를 깎아 나눠 먹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한 노란색 과육이 혀끝에 닿는 순간, 농축된 단맛과 함께 이국적인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낮의 소란함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방 안에는 은은한 스탠드 조명과 약간의 눅눅한 잔향, 그리고 조금은 솔직해진 숨소리만 남았다.
누구 하나 거창한 포부를 말하지 않았다. 성공이나 야망 같은 무거운 단어들은 이 방의 아늑한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내일은 어디를 갈지, 어떤 길거리 음식을 먹을지 같은 무용한 대화들이 느릿하게 오갔다. 특별할 것 없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망고 과즙을 보며 바보처럼 웃다 보니,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억지로 힘내라는 응원보다, 지금 이 순간의 무기력함마저 좋다는 인정이 더 깊은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며 깊은 밤 속으로 고요히 머무했다.
물기 어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의미 없는 선을 그었다.
- Luo Qi Da Fan Dian Zhong Xiao Guan의 깊은 욕조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낼 것.
- 근처 편의점에서 제철 망고를 사서 방 안에서 조용히 나눠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