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타이베이는 눅눅한 수건처럼 피부에 감겼다. 온도계는 22도를 가리켰겠지만, 체감은 그보다 훨씬 무겁고 끈적였다. 보도블록 틈새에 캐리어 바퀴가 낄 때마다 '텅!' 하는 비명과 함께 손목에 찌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결국 누군가 지도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허탈함에 젖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바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편의점에서 갓 데운 두유 한 팩.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가 눅눅한 공기를 잠시 잊게 했다. 혀끝에 닿는 콩의 고소함이 묵직하게 퍼졌고, 바람결에 실려 온 튀긴 두부의 기름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화려한 성찬은 아니었지만, 허기진 상태에서 마시는 미지근한 액체는 그 어떤 고급 요리보다 다정하게 느껴졌다.
"너의 방향 감각은 정말 하나의 예술 작품이야." 친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낄낄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멍하니 낯선 표지판의 한자를 응시했다. "이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예정에 없던 골목의 서사를 탐험한 거야."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는 걸 알지만, 그런 뻔뻔함이 여행의 묘미니까. 우리는 서로의 멍청함을 확인하며 묘한 동질감과 유대감을 공유했다.
덜컹, 덜컹. 캐리어 바퀴가 보도블록 위를 구르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것을 '타이베이 심포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음이 리듬이 되고, 리듬이 음악이 되는 착각. 아무 의미 없는 이름 붙이기 같은 무용한 짓들이, 지친 다리의 통증을 잊게 하고 여행을 조금 더 견딜 만한 낭만으로 바꾸어 놓았다.
Luo Qi Da Fan Dian Zhong Xiao Guan의 침대에 몸을 던지자 푹신한 매트리스가 나를 집어삼켰다. 천장의 깨끗한 흰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는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도시의 소음이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이 정적이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빳빳하게 다려진 리넨 시트에서는 갓 세탁한 면 냄새와 도시의 건조한 공기가 섞여 났다. 발가락 끝에 닿는 카펫의 거친 촉감이 오히려 현실감을 주어 안심이 되었다. 화려한 장식 대신 필요한 것들이 제자리에 놓인 간결한 객실, 그리고 무료 와이파이로 연결된 세상. 이곳은 그저 깊은 잠에 빠져들기에 충분하고 다정한 공간이었다.
예고 없이 쏟아진 소나기에 우리는 좁은 처마 밑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우산은 호텔에 두고 온 뒤였다. 젖은 옷소매가 팔뚝에 차갑게 달라붙었지만, 누구 하나 짜증 섞인 말을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엉망이 된 신발을 보며 서로를 비웃었다. 빗줄기가 피부에 닿는 감각이 생각보다 시원했다. 계획이 어긋난 순간 찾아오는 뜻밖의 해방감이었다.
대단한 깨달음이나 인생의 정답 같은 건 없었다. 그저 4월의 습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고, 친구들의 시끄러운 농담에 배를 잡고 웃었으며, 깨끗한 침대에서 단잠을 잤을 뿐이다. 삶은 원래 이렇게 별거 없는 순간들의 느슨한 집합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조각들이 모여 '좋았다'는 기억의 무늬가 된다. 다시 이곳에 온다면, 우리는 또 기꺼이 길을 잃을 것이다.
눅눅한 바람이 뺨을 스치던 오후의 거리.
-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현지 간식들을 잔뜩 사서 방에서 나눠 먹어봐.
- 4월의 타이베이는 변덕스러우니, 그냥 젖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걷길 추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