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침대는 꽤 넓네"
"방이 조금 오래된 것 같지?"
상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캐리어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낡은 카펫 위로 내려앉은 오후의 빛이 먼지 입자와 함께 느릿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응, 세월의 흔적이 꽤 느껴지네."
"그래도 침대는 꽤 넓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은 채,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빳빳하게 다려진 흰 시트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휴식, 그 시작은 생각보다 다정했다.
낡은 공간이 주는 다정한 위로
12월의 타이베이는 눅눅한 습기와 서늘한 바람이 공존하는 묘한 계절이다.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날카로운 공기를 피해 Luo Qi Da Fan Dian Zhong Xiao Guan의 로비로 들어섰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은은한 오래된 나무 향과 정중한 환대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올라온 객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심플한 구성이었지만, 오히려 그 간결함이 복잡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혀 주었다. 특히 이곳의 백미는 넉넉한 크기의 욕조였다. 수도꼭지를 틀자 콸콸 쏟아지는 강한 수압의 뜨거운 물이 욕조를 빠르게 채웠고, 곧 욕실은 뽀얀 수증기로 가득 찼다. 하루 종일 도시의 소음에 시달려 팽팽하게 긴장했던 종아리 근육이 뜨거운 물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피부를 감싸는 물의 무게감은 마치 부드러운 비단 한 겹을 두른 듯 매끄러웠고, 그 온기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빗장까지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창밖으로는 충효동로의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두꺼운 유리창은 그 소음들을 아늑한 백색소음으로 걸러내 주었다. 우리는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밀도 높은 침묵을 공유했다. 객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소파 공간에 나란히 앉아, 우리가 사 온 현지 과자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가 정적을 깨웠고, 달콤하고 짭조름한 간식들이 입안에서 굴러다닐 때마다 우리는 짧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밀크티의 달콤한 향이 방 안에 퍼지고, 종이컵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낡은 벽지와 조금은 삐걱거리는 가구들이 오히려 우리가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갈 여행자임을 상기시켰다. Luo Qi Da Fan Dian Zhong Xiao Guan의 낮은 조명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했다. 완벽한 최신식 시설은 아닐지라도,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거리, 그리고 내 옆의 당신. 그 조화로움이 우리를 더 깊게 연결해주고 있었다.
창밖의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란히 누워 있었다.
- 깊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하루를 다독여봐.
- 근처 백화점을 천천히 거닐며, 우리의 취향이 닮은 작은 소품 하나를 골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