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들의 성전, 지도라는 이름의 거짓말
"내 말 믿어. 구글 맵이 가라는 대로만 가면 무조건 101 빌딩이 나온다고. 이건 수학이야, 수학!"
"수학 같은 소리 하네. 너 저번에도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북쪽으로 꺾어서 우리 다 같이 미아 될 뻔했잖아. 기억 안 나?"
"그건 지도가 업데이트가 안 된 거라고! 야, 이번에 길 잃는 사람이 저녁 쏘기다. 콜?"
"콜. 근데 넌 이미 졌어. 방금 오른쪽으로 꺾었지? 거긴 막다른 길이야, 이 바보야!"
우리는 서로의 멍청함을 확인하는 것에 꽤 진심이었다. 10월의 타이베이 공기는 생각보다 쾌적했고, 얇은 겉옷 사이로 스며드는 서늘한 바람이 콧등을 간지럽혔다. 길가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버블티 향기와 낯선 언어들의 소음이 섞여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소음을 삼키는 카펫과 은색 바늘의 도시
그랜드 하얏트 타이베이의 로비는 압도적이었다. 높은 천장이 만들어내는 웅장함은 마치 현대적인 성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는 은은한 조명은 마치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주었고, 수많은 여행자가 오가지만 소음은 공중에서 부드럽게 흩어졌다. 객실로 들어서자 발바닥을 감싸는 두툼한 카펫의 촉감이 전해졌다. 발을 깊게 디딜 때마다 발가락 끝이 푹신한 섬유 속으로 파묻히며 도시의 피로를 흡수하는 기분이었다.
방은 광활했다. 현관에서 창가까지 걷는 동선은 그 자체로 작은 산책로 같았고, 빳빳하게 다려진 시트에서는 서늘한 세제 향과 함께 포근한 온기가 배어 나왔다. 창밖으로는 타이베이 101 빌딩이 보였다. 거대한 은색 바늘 하나가 가을의 푸른 하늘을 정교하게 꿰매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특히 럭셔리 스위트 룸의 넓은 욕조에서 몸을 녹이며 바라본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우리가 이곳에 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가장 완벽한 장치였다.
아침에 방문한 8개의 레스토랑 중 하나에서 맛본 뷔페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갓 구운 빵의 바삭한 소리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딤섬의 촉촉함, 그리고 설탕을 살짝 섞은 따뜻한 두유의 미지근한 달콤함이 혀끝에 감돌았다. 야외 수영장의 푸른 물결이 도시의 회색빛 건물들 사이에서 오아시스처럼 빛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이다. 10월의 햇살이 테이블 위로 길게 늘어지던 그 무용하고도 안락한 시간이, 우리를 다시금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새벽 두 시, 덜어낸 말들의 온도
"근데 진짜, 여기 침대 너무 좋은 거 아니냐. 나 그냥 여기서 일주일 내내 누워만 있고 싶어."
"너 원래 어디서든 누워 있잖아. 그게 네 인생 유일한 특기지."
"말 좀 예쁘게 해라. 그래도 여기 오길 잘했어. 공기도 좋고,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
"뭐, 나쁘지 않았어. 다음에도 그냥 이렇게 오자."
낮 동안의 소란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방 안에는 낮은 조명만이 남았다. 우리는 더 이상 내기를 하지 않았고, 누가 더 많이 걸었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자세로 흩어져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하지만 각자의 생각 속에 잠긴 채 침묵을 공유했다.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안온한 신뢰였다.
진심을 말하는 건 쑥스러운 일이라, '나쁘지 않았다'는 무심한 말로 모든 만족감을 대신했다. 에어컨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지만, 서로의 존재가 주는 온기 덕분에 마음만은 눅눅하지 않았다. 굳이 힘내라는 말이나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다정한 밤이었다.
창밖의 101 빌딩이 밤의 정적 속에서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 그랜드 하얏트 타이베이에 머문다면 101 빌딩 뷰 객실을 선택해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길 권한다.
- 10월의 타이베이는 걷기 좋으니, 호텔에서 나와 신이구의 골목들을 정처 없이 배회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