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라는 이름의 다정한 신호
9월의 타이베이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젖은 수건처럼 온몸을 감싸는 눅눅한 계절이었다. 충효신생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습한 바람을 맞으며 몇 걸음 옮겼을까.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의 거대한 검은 유리 외벽이 낮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을 거울처럼 반사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무거운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졌다. 정갈한 화이트 톤의 벽지와 매끄러운 나무 문틀이 주는 일본식 특유의 정돈된 분위기가 오히려 우리를 더 깊은 나른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아 기분 좋은 소름이 돋을 때쯤, 누군가 툭,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홀린 듯 다시 신발을 신었고, 호텔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비닐봉투 속에는 갓 튀겨내어 고소한 향이 진동하는 대만식 튀김과 쫀득한 펄이 가득한 밀크티, 그리고 눅눅한 날씨를 잊게 해줄 차가운 과일들이 무작정 담겼다.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봉투의 무게가 왠지 모를 안도감과 설렘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바삭한 껍질 속에 숨겨둔 시시한 진심들
"야, 너 아까 화산 일구일사에서 산 그 기념품, 진짜 쓸모 있는 거 맞아? 집에 가져가면 짐만 될 텐데."
침대 위에 대충 펴놓은 신문지 위로 노란 튀김 조각들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었다. 친구 하나가 바삭한 튀김 껍질을 조심스레 까며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빨대로 밀크티의 쫀득한 펄을 천천히 씹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예쁘면 된 거지. 원래 여행의 묘미는 일상에서는 절대 안 살 것 같은 쓸모없는 걸 사는 맛에 오는 거야."
"말은 잘해. 결과적으로 네 가방만 더 무거워졌잖아. 나중에 짐 쌀 때 내가 도와줄 생각 전혀 없으니까 미리 알아둬."
우리는 낄낄거리며 서로의 멍청한 선택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안주 삼아 씹었다. 누가 더 이상한 물건을 샀는지, 누가 더 어처구니없이 길을 잘못 들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사실 별거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튀김의 짭조름한 풍미와 방 안의 미지근한 공기가 섞여 묘한 고양감을 만들어냈다. 너희는 믿지 않겠지만, 나는 이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완벽한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계획이나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이렇게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바보 같은 면을 확인하고 웃어넘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진짜 위로였다.
"근데 이 과일, 맛이 좀 묘하지 않아? 달긴 한데 뭔가 낯설어."
"그러게. 근데 이상하게 계속 들어가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과일을 씹었다. 창밖으로는 타이베이의 밤 소음이 희미한 파도 소리처럼 들려왔지만, 이 방 안만큼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우리만의 작은 섬 같았다.
소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인 온기
음식이 바닥나고 왁자지껄하던 대화가 잦아들자, 방 안에는 기분 좋은 정적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의 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푹신한 소파 베드에 몸을 깊숙이 묻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고, 나는 욕실로 향했다.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의 욕실은 욕조와 세면대가 분리된 구조라 한결 쾌적하고 여유로웠다. 쫀쫀한 세안 무스가 얼굴에 닿을 때의 그 부드러운 촉감이 하루 동안 쌓인 도시의 먼지와 피로를 깨끗이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고 몸을 담그자, 묵직한 물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던 긴장을 천천히 밀어냈다. 수증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욕실 안에서 나는 비로소 완전한 휴식을 느꼈다.
방으로 돌아와 슬라이딩 도어를 닫자 '스르륵' 하는 낮은 마찰음이 들렸고, 그 문 너머로 친구들의 고요한 숨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하얀 벽지에 반사된 은은한 간접 조명이 방 안을 포근한 우윳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을 때, 나는 이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소음, 그리고 적당한 거리의 사람들이 주는 안온함에 깊이 취했다.
현관에 나란히 놓인 세 켤레의 운동화가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 편의점에서 파는 짭조름한 대만식 닭튀김과 달콤한 버블티의 단짠 조합
- 야시장이나 근처 마트에서 공수해 온 제철 망고와 작은 컵 과일 모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