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툰 진심과 소란을 묵묵히 지켜본 것들
- 욕조: 뽀얀 김이 서린 욕실 안, 은은한 입욕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찰랑이는 물결이 벽면에 부딪히며 내는 규칙적인 소리 속에서, 누가 먼저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10분간의 치열한 가위바위보를 지켜봤다. "지는 사람이 편의점 털어오기!"라는 말도 안 되는 내기에 목숨을 걸던 우리의 유치한 승부욕을.
- 아리산 차잔: 찻잎이 천천히 고요해지으며 뿜어내는 옅은 갈색빛과 쌉싸름한 흙 내음이 방 안을 채웠다. 처음엔 인생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다가, 결국 어젯밤 먹은 야식 메뉴의 순위로 화제가 급전환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폼 잡던 모습이 무색하게 결국은 먹는 이야기뿐이었던 우리의 단순함을.
- 흰색 미닫이문: 손끝에 닿는 매끄러운 나무의 촉감과 닫힐 때 나는 가벼운 '탁' 소리가 경쾌했다. 좁은 입구를 동시에 통과하려다 어깨가 툭 부딪히고, 결국 한 명이 밀려 나가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지켜봤다. "야, 너 좀 비켜봐!"라고 외치던 덩치 큰 친구의 눈치 없는 진입과 그로 인해 터져 나온 웃음소리를.
- 세안 무스: 몽글몽글하고 하얀 거품이 손끝에서 톡톡 터지며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다. 5월 타이베이의 끈적한 습기를 걷어내려 필사적으로 얼굴을 문지르던 절박한 손길들을 지켜봤다. 콧등에 하얀 거품을 묻힌 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짓던 친구의 얼굴, 그 찰나의 우스꽝스러움을.
- 침대: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서늘한 감촉이 지친 피부에 닿아 안도감을 주었다. 화산 1914 문창원구를 걷다 지쳐 돌아온 우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쓰러지던 묵직한 무게감을 지켜봤다.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처참한 몰골로 서로의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밤을.
이 무생물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기록한다면
아마 이 방의 가구들은 우리를 '사랑스러운 소란을 몰고 온 침입자들'이라고 정의할지도 모른다.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의 정갈한 흰색 벽과 나무 프레임은 원래 고요한 정적을 위해 설계되었겠지만, 우리는 그 정적의 틈새마다 웃음과 수다를 촘촘히 채워 넣었다. 5월의 타이베이는 공기마저 끈적였고, 우산 아래서 서로의 어깨가 닿을 때마다 묘한 불쾌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훠궈의 진한 향이 옷깃에 배어 있었고, 푸항 또우장 앞에서 줄을 서며 나눈 시시한 농담들은 습한 바람에 흩어졌다. 하지만 호텔의 미닫이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소음과 습기가 일순간에 차단되며 느껴지던 그 쾌적함은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비밀 통로 같았다. 특히 일본식 스타일의 분리형 욕조에 몸을 담그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우리만의 밀도 높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소파 베드에 엉켜 누워 서로의 못난 점을 툭툭 건드리며 웃던 그 무용한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여행을 떠나온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소란스럽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가 그치지 않아도 좋았을, 그런 밤이었다.
- 충효신생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라 비 오는 날에도 쾌적하게 진입 가능하다.
- 객실 내 분리형 욕조가 훌륭하니, 하루의 피로를 푸는 반신욕 시간을 꼭 가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