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타이베이는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눅눅한 물기가 스며드는 도시였다. 충효신생역 1번 출구로 나왔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한 공기와 이름 모를 열대 꽃들의 진한 향기였다. 우리는 서로의 보폭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걸었다. 한 사람은 조금 빠르고, 한 사람은 조금 느리게. 그 미묘한 간극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던 오후였다. 도심의 소란을 거울처럼 매끄럽게 반사하던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의 검은 외벽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식처를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3층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피부를 감싸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끈적였던 일상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내렸다. 우리가 묵은 할리우드 트윈 룸은 두 개의 커다란 캐리어를 활짝 펼쳐놓아도 공간이 남을 만큼 넉넉했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설 때 느껴지는 묵직한 마찰음은 마치 현실의 소음을 차단하는 경계선처럼 들렸다. 방 안을 채운 은은한 나무 향과 빳빳하게 다려진 리넨의 냄새가 어우러져 마음을 차분하게 고요해지혔다. 하얀 시트의 바스락거리는 감촉 속에 몸을 던졌을 때, 창밖으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낮은 저음의 메트로놈처럼 우리의 시간을 느리게 조율했다.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우롱차 한 잔을 나누며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는 내일을 기대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차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고, 그 온기는 손끝을 타고 마음속까지 천천히 퍼져나갔다. 분리된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자, 쏴아 하는 물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기분 좋게 메웠다. 물속으로 몸을 깊숙이 밀어 넣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온도, 이 습도,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너.' 졸업이라는 막연한 단어가 공중을 떠다녔지만, 우리는 굳이 그것을 붙잡아 정의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젖은 옷을 말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 하얀 침대 속으로 파고드는 그 무용한 반복이 더없이 소중했다. 저녁 무렵 맛본 망고 빙수의 진한 노란빛 단맛과 혀끝을 아리게 만드는 차가운 얼음의 감촉은 여행의 피로를 달콤하게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서로의 입가에 묻은 단내를 닦아주며 나눈 작은 웃음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비 그친 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의 아스팔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뜨거운 김과 젖은 운동화의 묵직함마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완벽한 계획이 될 수 있을까. 호텔 방의 조명은 낮게 내려앉아 은은했고, 나무 문 너머의 복도는 깊은 바다처럼 고요했다. 우리는 내일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다시 그 하얀 방의 품으로 돌아갔다. 밤이 찾아온 도시의 불빛이 창가에 조각조각 걸려 있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다정한 그 빛들이 우리의 고요한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의 붉은 벽돌 길을 따라 비 온 뒤의 흙내음을 맡으며 걸어보세요.
- 호텔 근처 푸항더우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두유와 갓 튀긴 요우티아오를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