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란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깊은 욕조: 눅눅한 공기를 밀어내는 뜨거운 김과 은은한 비누 향. 8월의 타이베이가 남긴 끈적임을 전부 씻어내려던 우리의 야심 찬 계획을 지켜봤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욕실을 가득 채울 때, 밖에서 젖은 옷을 입고 투덜대던 소란함이 일순간 정적으로 바뀌던 그 찰나를 기억한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완전한 무용의 상태로 고요히 머무했다.
나무 미닫이문: 매끄러운 나무의 질감과 '드르륵' 하며 닫히는 경쾌한 마찰음. 편의점에서 산 낯선 간식 봉투들을 양손에 가득 든 채, 누가 먼저 방에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유치하게 실랑이하던 우리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세상의 습한 열기가 차단되며 찾아온 서늘한 안도감. 그 문은 우리만의 작은 요새이자, 세상의 모든 소란을 잠시 멈춰 세우는 경계선이었다.
하얀 호텔 슬리퍼: 발등을 감싸는 보들보들한 천의 감촉과 가벼운 무게감. 화산 일구일사 창의문화원구를 걷느라 퉁퉁 부어오른 발을 겨우 밀어 넣었을 때의 그 쾌적함을 기억한다. 매끄러운 바닥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내일은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헛걸음을 할지 진지하게 토론하던 우리의 발걸음을 모두 기록했다. 슬리퍼의 가벼움만큼이나 우리의 고민도 어느새 가벼워져 있었다.
몽글몽글한 세안 폼: 손끝에서 터지는 미세한 거품의 촉감과 상쾌한 향기. 끈적이는 땀과 도시의 먼지로 뒤덮인 얼굴을 씻어내며, 거울 속에 비친 서로의 엉망진창인 몰골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던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거품이 얼굴을 덮을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솔직해졌고, 결국 아무 의미 없는 농담과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을 꺼내놓으며 깊은 밤을 지새웠다.
에어컨 리모컨: 손가락 끝에 닿는 딱딱한 플라스틱의 감촉과 '삑' 하는 기계음. 섭씨 삼십 도를 웃도는 열기를 뚫고 들어온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았던 구원자였다. 온도를 일 도라도 더 낮추려는 자와, 춥다며 얇은 호텔 이불을 끌어당기는 자 사이의 소리 없는 전쟁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작은 버튼 하나가 우리 방의 계절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음을 그는 알고 있다.
이 물건들이 우리에 대해 말한다면
아마 그들은 우리를 '계획은 거창하지만 실행은 엉망인, 그래서 더 유쾌한 여행자들'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여덟 월의 타이베이 하늘이 누군가 반복해서 구겨놓은 편지지처럼 흐릿했고, 예보에도 없던 비에 옷이 다 젖었음에도 우리는 그 상황이 웃기다며 낄낄거렸다. 호텔 그레이스리 타이베이의 정갈하고 하얀 일식 인테리어는 우리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어 더욱 기묘하고 따뜻한 조화를 이뤘다. 특히 넓은 할리우드 트윈 룸에 짐을 풀어헤치고, 오후의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우롱차 향기에 취해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시간들. 좁은 현관에서 신발이 엉키고, 누가 더 짐을 많이 챙겨왔는지 내기를 하며 서로의 가방을 향해 투덜대던 모습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우산이나 잘못 든 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 엉뚱한 선택들이 가져다준 뜻밖의 작은 가게나 낯선 풍경들에 대해 말할 것이다. 정돈된 공간 속에서 가장 무질서하게 굴었던 우리들의 시간. 그것은 꽤 괜찮은 소동이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낭비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베이의 밤거리는 빗물에 젖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 호텔에서 도보 거리인 충효신생역의 편리함을 누리며 화산 일구일사를 천천히 걸어보길.
- 이른 아침, 근처의 푸항또우장에서 줄을 서며 타이베이 특유의 활기찬 아침을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