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툰 여행을 묵묵히 지켜본 다섯 가지 증거들
젖은 우산. 눅눅한 공기를 머금은 채 현관 구석에서 뚝뚝 눈물을 흘리던 모습. 누가 먼저 젖는지 내기했던 유치한 승부욕과, 결국 셋 다 신발 끝이 축축하게 젖어버린 허망한 결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편의점 비닐봉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던 얇은 플라스틱의 질감. '내일부터는 진짜 다이어트'라고 외치며 야식으로 산 밀크티와 튀김들을 품고 있던 봉투. 우리의 결심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 묵직한 무게로 증명하고 있었다.
하얀 침대 시트. 빳빳하고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의 쾌감. 신생공원 장미원을 걷느라 다리가 풀린 우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쓰러졌을 때, 그 둔탁한 충격을 묵묵히 받아내던 너그러운 바탕이었다.
카드키. 손끝에 닿는 매끄럽고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너무 웃어서 정신이 나간 채로 문 앞에서 한참을 헤매던 우리의 서툰 손길을 기억한다. 결국 잘못된 방에 카드를 댔을 때 터져 나온 비웃음소리까지 모두 기록했을 것이다.
충전 케이블. 엉망으로 꼬여 있는 전선들의 복잡함. 단 하나의 콘센트를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소리 없는 눈치싸움과, 결국 서로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며 낄낄거렸던 그 좁은 틈새의 긴장감을 기억하는 물건이다.
만약 이 물건들이 입을 열어 우리를 말한다면
아마 그들은 우리를 '계획 없는 탐험가들'이라고 부를 것 같다. 5월의 타이베이는 공기가 끈적였다. 피부에 닿는 습도는 마치 도시 전체가 우리를 눅눅하게 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눅눅함을 투덜거리며 Lv Ju Wen Lv Tai Bei Song Shan Ji Chang Guan의 로비로 들어섰다. 호텔은 과하지 않고 담백했다. 특히 라운지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공기와 창밖으로 펼쳐진 도시의 전경은 들뜬 마음을 적당히 고요해지혀 주었다.
"야, 그냥 여기서 낮잠이나 잘까?" 누군가의 제안에 우리는 계획했던 일정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보이는 신생공원의 장미들은 5월의 햇살을 받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진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쯤,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낮게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송산 공항이 가까운 덕분에 누릴 수 있는 묘한 긴장감이었다. 우리는 그 소리에 맞춰 누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내기를 했다. "내가 더 커!" 주변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강하게 틀고 차가운 음료를 마셨을 때, 우리는 서로의 꼴이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젖은 양말,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이유 없는 즐거움.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저 같이 있었고, 날씨가 조금 습했으며, Lv Ju Wen Lv Tai Bei Song Shan Ji Chang Guan의 침대가 포근했다. 무용한 시간들이 모여 가장 밀도 높은 기억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았다.
비행기 소음마저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리던 오후의 낮잠.
- 5월의 신생공원 장미원은 생각보다 넓으니,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으세요.
- Lv Ju Wen Lv Tai Bei Song Shan Ji Chang Guan 근처 편의점에서 현지 간식을 털어와 야식 파티를 즐겨보길.